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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

스마트폰 시대의 시니어 - 무엇을 남길 것인가? 스마트폰 시대의 시니어들은 날마다 무엇을 할까 자못 궁금하다. 누구나 휴대폰을 갖고 있다. 80이 넘은 내 숙모님도 날마다 카톡으로 내 블로그를 읽는다. 90이 가까운 내 이모부님은 문자로 블로그를 읽고 감회를 문자로 보내주신다. 스마트폰 시대에 카톡이 공해라는 견해도 있지만 소통의 수단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스마트폰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전화, 문자, 카톡 그리고 촬영 이외에는 사용하는 것이 별로 없다. 오늘 오전에 무안노인복지관에서 강의가 하나 있다. 지난해에 '스타니스랍스키 시스템과 인생'이란 주제로 특강을 했었다. 올해는 백창석 학장의 요청으로 '스마트폰 시대의 시니어 - 무엇을 남길 것인가?' 라는 논제로 우리 고장의 시니어들을 만날 예정이다. 연극을 전공한 필.. 더보기
유달산 기슭의 황금빛 꽃무릇 초성 김우진의 어린 시절 추억이 서려있는 유달산 기슭을 다녀왔다. 유달산 밑에는 차범석 명칭의 길도 있고 김우진 길도 있다. 차범석 선생이 평소 모스크바에 왔을 때 체홉 거리를 보고 부러워했었다. 우리나라도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개념이 많이 발전했고 예술인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거리 명칭만 예술인의 이름을 달았다고 문화도시라고 우긴다면 곤란하다. 내가 그렇게 떠들고 있지만 아직까지 김우진극장도 없고 차범석극장도 없다. 그나마 다행이다. 거리라도 있으니. 유달산 기슭에 김우진 거리와 차범석 거리가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목포에 개교 100년이 넘는 초등학교가 몇 개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나온 것으로 유명한 학교가 목포 북교초등학교다. 이 학교의 2회 졸업생이 김우진이고, 차범석은 28회 졸업생.. 더보기
'불타는 별'을 위한 10개의 컷 여기저기서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곳 남녘에서는 국제수묵비엔날레와 목포 2023문학박람회가 개최되고 있습니다. 어제 청계 월선리 예술인마을에서 열린 김우진초혼예술제에 다녀왔습니다. 윤심덕은 알아도 김우진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현해탄에서 윤심덕과 함께 산화한 한국근대극의 개척자 김우진... 김우진의 초혼묘가 바라다보이는 월선리 저수지 뚝방... 월선리(月仙里) 마을 주민들과 예술인들이 주축이 되어 개최한 초혼예술제는 건강한 지역축제의 방향성을 제시한 멋진 행사였습니다. 김우진은 평소 두 개의 호를 사용했습니다. 초성(焦星)과 수산(水山). '초성'을 한글로 풀이하면 '불타는 별'이 됩니다. 연극 이야기를 하자면 할 말이 많습니다. 특히 내 고장 출신의 김우진 선생에 대한 숙제를 안고 있는.. 더보기
초혼묘(招魂墓) 가던 날 며칠 전 수산(水山) 김우진(金祐鎭, 1897~1926) 선생의 초혼묘(招魂墓)를 다녀왔다. 초혼묘는 말 그대로 넋을 부르는 묘로 시신이 없는 묘를 말한다. 수산의 초혼묘는 청계 월선리에서 일로로 가는 길목의 산 정상에 있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묘소까지 가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어떻게 이런 장소에 묘를 썼을까? 그런 의문은 산의 정상을 오르니 쉽게 풀렸다. 초혼묘는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김우진이 활동하던 시절만 해도 지금의 들판은 바다였다. 윤심덕과 함께 바다에 몸을 던진 수산의 영혼을 고향 땅으로 부르기 위하여 그 가파른 산의 정상에 초혼묘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정표가 없어 수산 선생의 초혼묘를 찾지 못하고 산속을 헤매다가 돌아온 지 1년을 넘겨버렸다. 마침내 박관서 작가의 안내로 초혼묘를 찾아.. 더보기
아름다운 동행 그제 강만홍 교수의 을 강진아트홀에서 관람했습니다. 세익스피어의 를 신체극으로 풀었습니다. 에너지가 무대를 가득 채운 멋진 몸짓이었습니다. 어제 극작가 김우진 선생의 '초혼묘'를 다녀왔습니다. 그의 묘는 내 시골집 유교리와 바다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맑은 하늘을 아름다운 꽃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마지막 가을을 함께 아쉬워할 수 있다는 것도 행복입니다. 우리는 참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더보기
체호프, 벚꽃동산, 목포 한국 근대극과 현대극의 선구자 김우진과 차범석을 배출한 도시 목포. 목포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나는 내 고향 목포에 대한 나름의 부채를 안고 있다. 서울과 광주에서 작품 활동을 접고 목포에 내려온 연유도 거기에 있다. 두 거장 말고도 목포는 연기자 김성옥, 김길호, 연출가 정일성과 극작가 김창일을 배출한 도시다. 그렇지만 현재 목포의 연극 수준은 서울이나 대도시에 비교하면 낙후되어 있다. 작년에 입암산 자락에서 활짝 핀 벚꽃을 보면서 체호프의 희곡 을 떠올렸다. 물론 연극의 분위기는 분명 다르지만, 연극 이 목포에서 상설 공연되는 꿈을 꾸었다. 입암산 근처에 문화예술회관이 있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젊은 배우들을 길러내고 기성 연극인들을 재훈련시키고, 원로배우들을 초청하여 상주시킨.. 더보기
현장수업을 마치며 오늘은 종일 집에만 있었습니다. 블로그 둘 올리고 김우진 선생과 차범석 선생의 일생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두 분 다 천석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자 삼 대를 못 간다.” 우리 집안과 마찬가지로 두 분의 집안도 3대를 가지 못하고 기울어졌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두 분은 이 땅에 이름 석 자를 남기셨습니다. 한국연극의 초석을 다지신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말입니다. 연출가는 사진을 남기고 극작가는 작품을 남깁니다. 시대가 바뀌어 연출가도 자신의 공연 작품을 남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두 분이 연출한 작품을 영상으로 볼 수 없지만, 두 분의 희곡을 공연한 작품들을 모아 언제든지 영상으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목포문학관이 해야 할.. 더보기
김우진, 차범석 선생과의 만남 목포는 문학과 예술의 도시이다. 목포 출신이거나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는 문인들로는 한국 문단의 최초의 본격적인 여류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김우진, 차범석, 평론가 김 현, 소설가 천승세, 최인훈, 김은국, 시인 김지하 등 그 수를 셀 수도 없이 많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목포는 단일 도시로는 가장 많은 예술원 회원을 배출한 예향의 도시이다. 목포시가 극작가 김우진, 여류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차범석 선생의 업적과 그분들의 생과 문학을 작은 공간 속에 압축한 ‘목포문학관’을 2007년 10월 9일 개관하였다. 지상 2층 건물로 1층엔 박화성과 차범석의 공간을 마련했고, 2층엔 김우진과 평론가 김현의 공간을 마련하여 국내 최초 4인 복합 문학관으로 발전한 것이다. 지난 금요일 동신대학교 대학원..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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