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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현장

두 개의 불상 여기 두 개의 불상이 있다. 하나는 문화재청 수장고에 하나는 고창 선운사 지장보궁에. 태생이 비슷하다. 하나는 고려시대 서산 부석사에서 하나는 조선시대 고창 선운사에서. 운명이 비슷하다. 하나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하나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끌려갔다. 도적이 무엇이냐. 남의 보물 강탈한 것도 불법이고 남의 보물 매수한 것도 불법이다. 모든 사물에는 불성이 있다. 부처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모든 사물은 제 자리에 존재해야 한다. 선운사 지장보살좌상이 그의 고향 고창에 돌아와 제 자리를 잡아 빛을 발하듯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도 그의 고향 서산으로 돌아와야 한다. 임진왜란 때 도난 당한 불상의 소유권을 법의 잣대로 다시 잘랐다. 1심 판결을 뒤집고 일본 관음사로 금동상을 돌려줘야 한다는 2심 판결이.. 더보기
육군 중위 김상진 곁으로 가시다 대한민국 군인 김상진 중위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56년 1월 21일 경기도 양주에서 순직했다. 대한민국 군인 김상진 중위가 남긴 어린 두 자녀의 양육과 교육은 나주나씨 가문의 딸 신자의 몫이었다. 그렇게도 모진 삶 그렇게도 먼 길이던가. 나의 고모요 내 아버지의 누나인 나신자는 2023년 1월 31일 남편 김상진 중위의 곁에 누웠다. 67년 10일만이다. 남편 곁이 이렇게 멀던가. 신방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다. 유택이지만 남편 곁이 좋다. 술로 연명하며 반찬 타령만 하시던 시아버지. 유교 우리집에 내려와 시집살이 설움을 동생인 아버지에게 하소연 하던 우리 고모의 촉촉한 눈망울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내 고모를 힘들게 했던 김상진 중위의 부친을 이제 조국의 이름으로 용서한다. 슬픈 역사의 이름으로 .. 더보기
나철과 대종교 우리는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홍암 나철은 왜 대종교를 중광하였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단군은 어떤 존재인가? 홍암 나철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나는 우리 민족과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새벽은 밝아오는데, 아직도 글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네. 29세 때 문과에 장원급제한 나철은 승정원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으로 벼슬을 시작해 왕의 곁에서 밤낮으로 머물렀다.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있다. 홍암이 후에 대종교를 창시하는 사상적 토대를 이룬 것은 그때의 독서가 큰 몫을 하게 된다. .고종은 관복과 말을 하사할 정도로 홍암을 총애했다. 국운이 기울자 홍암이 벼슬에서 물러나려고 하자 고종은 세 번이나 반려한 끝에 허락했다. 후에 징세서장(徵稅署長)으로 임명했지만 거절하고 고향 벌교로.. 더보기
홍암 나철 선생을 만나다 어제는 보성에 다녀왔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꼬막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벌교에 대종교를 중광(重光)한 홍암 나철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민족의 선각자이신 홍암 선생이 홍합이나 꼬막만큼도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씁쓰레하다. 홍암 나철 선생의 이야기는 개천절의 유래를 이야기하면서 간략하게 언급했었다. 원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윗대에서부터 차례대로 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후대 인물인 홍암 선생 이야기는 아직도 멀었다. 생각을 바꿔 오늘부터 홍암 선생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라 꼴이 엉망이다. 여야가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싸우기만 하고 있다. 나라에 어른도 없고 바른 소리 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나철 선생의 본명은 인영(寅永)이며 호는.. 더보기
동백꽃과 시인(詩人) 지난 7일 목포에서 문예지 의 문학 토크가 열렸다. 나비시회와 목포작가회의 시인들이 어우러진 자리였다.. ‘목포의 시인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목포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관서 시인과 류경 시인의 시집을 매개로 곽윤경 문학평론가와 강은교 시인을 비롯한 부산, 제주의 문인들이 목포와 신안 압해도에서 1박 2일의 시와 문학의 향연을 펼쳤다. 카페 ‘밀물’에서 개최된 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한 나는 8일 압해도에서 시인들과 만났다. 여주 출신의 양광모 시인을 목포에서 처음 만나 자리를 함께하였다. 연극판에서 잔뼈가 굳은 나는 목포 시인들과 강은교 시인을 제외하곤 모두 초면이다. 그런데 시인들이 압해도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내 블로그 덕이었다. 압해도 분재정원의 애기동백길에는 강은교 시인의 시비가 있다. 내가 .. 더보기
문화관광도시 목포가 달려오고 있다! 목포시가 관광산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가칭 ‘목포관광공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목포시는 "분산된 문화관광 관련 산하기관의 통합과 수익사업 발굴 등 효율적 기구로서 공사 설립의 가능성을 검토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관광공사는 광역 지자체에서 주로 운영하고 있으며, 몇몇 기초단체에서도 운영하거나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풍부한 지리적, 역사적 문화자원과 관광인프라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4대 관광거점도시’와 ‘법정 문화도시’로서 선정된 목포시의 경우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관광에 문화를 더하고, 목포를 중심으로 신안, 무안, 영암, 해남을 묶어내는 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목포시의 관광객은 지난 2017년까지 250만 명 수준을 유지하다 대푝 성장하여 590만 명을 기록했다. 오는 2.. 더보기
연극배우 김성옥 선배의 부음을 듣고 아침에 원로 연극인 김성옥 선생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생은 1935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중·고교를 거쳐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 창극 ‘적벽가’로 무대에 선 고인은 1960년 이오네스크의 ‘수업’을 통해 연극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에는 연극 ‘화랑도’를 연출하며 활동의 폭을 넓혔다. 연극 ‘만선’, ‘베니스의 상인’, ‘고도를 기다리며’ 등 100여 편에 출연하여 연극배우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드라마 ‘임꺽정’, ‘태조 왕건’, ‘왕과 비’ 그리고 영화 ‘창공에 산다’, ‘난파선’, ‘돌아온 님아’ 등을 합치면 생전에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선생을 목포가 낳은 뛰어난 연극인이라고 부른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배우임.. 더보기
사성암(四聖庵)에 오르다 구례(求禮) 오산(鼇山) 사성암(四聖庵)은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에 있는 명승지이다. 1984년 전라남도의 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대한민국의 명승 제111호로 승격되었다. 구례향교에서 발간하는 에는 구례 오산의 경관을 "그 바위의 형상이 빼어나 금강산과 같으며, 예부터 부르기를 소금강"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오산 정상 부근의 깎아지른 암벽을 활용하여 지은 사성암은 백제 성왕 22년(544년)에 연기조사가 건립하여 원래 오산암(鼇山庵)이라 불리다가 이곳에서 4명의 고승인 의상,원효대사,도선,진각국사가 수도하여 사성암이라 하였다는 설명은 에서 언급하였다. 터가 인물을 낳고 인물이 터를 빛낸다. 오산의 경관이 의상, 원효, 도선, 진각을 배출하였다. 산사가 산속에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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