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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현장

홍암 나철 선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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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보성에 다녀왔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꼬막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벌교에 대종교를 중광(重光)한 홍암 나철 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민족의 선각자이신 홍암 선생이 홍합이나 꼬막만큼도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씁쓰레하다.

 

홍암 나철 선생의 이야기는 개천절의 유래를 이야기하면서 간략하게 언급했었다. 원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윗대에서부터 차례대로 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후대 인물인 홍암 선생 이야기는 아직도 멀었다.

 

생각을 바꿔 오늘부터 홍암 선생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라 꼴이 엉망이다. 여야가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 싸우기만 하고 있다. 나라에 어른도 없고 바른 소리 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나철 선생의 본명은 인영(寅永)이며 호는 홍암(弘巖)이다. 관향은 나주이며 29세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승문원권지부정자를 거쳐 33세 때 징세서장의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곧 사퇴하고 구국운동에 뛰어들어 민족 종교운동을 시작하였다.

 

그가 중창한 대종교에는 다른 민족종교와는 달리 식자층들이 많았다. 대종교를 빼놓고는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말할 수 없다. 대종교 교인들은 북로군정서를 만들었으며 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다.

 

그뿐인가. 대종교 교인들은 상해임시정부의 주축이었으며, 조선어학회사건을 일으킨 근간에 대종교가 있었다. 우리 민족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대한민국을 광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종교의 선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종교는 한국의 역사가 단군으로부터 출발함을 천명한 종교이며, 홍익인간의 건국이념과 교육이념을 정립시킨 민족종교였다. 또 우리의 경축일인 개천절도 대종교로부터 나왔다.

 

홍암 나철 선생은 대종교와 단군 사상의 창시자이고, 독립운동의 아버지로 불린다. 홍암이 1916년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 토굴 속에서 조식법으로 호흡을 끊고, 순명하실 때 남긴 48자의 예언시는 참으로 신묘하다. 어떻게 30년 후의 국제정세를 이렇게도 정확하게 예언했을까?

 

홍암나철 예언시

(1915)

 

鳥鷄七七 日落東天(조계칠칠 일락동천)

黑狼紅猿 分邦南北(흑랑홍원 분방남북)

狼道猿敎 滅土破國(낭도원교 멸토파국)

赤靑兩陽 焚蕩世界(적청양양 분탕세계)

天山白陽 旭日昇天(천산백양 욱일승천)

食飮赤靑 弘益理化(식음적청 홍익이화)

 

을유년 815일에 일본이 패망하고

소련과 미국이 나라를 남북으로 분단하도다.

공산주의와 외래문화가 민족과 국가를 망치고

공산·자유의 극한대립이 세계를 파멸할지나

마침내 한민족의 선도문화가 하늘 높이 떠올라

공산·자유의 대립 파멸을 막고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루리라.

개천문
홍암나철기념관 전경
사당 전경
흉상
개천문 앞에서
나철 선생 생가
생가 안내판
생가
나철 선생 신위
생가 동백꽃
예언시/독립기념관
보성군 득량만
2023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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