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원로 연극인 김성옥 선생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생은 1935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중·고교를 거쳐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56년 창극 ‘적벽가’로 무대에 선 고인은 1960년 이오네스크의 ‘수업’을 통해 연극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 1963년에는 연극 ‘화랑도’를 연출하며 활동의 폭을 넓혔다.
연극 ‘만선’, ‘베니스의 상인’, ‘고도를 기다리며’ 등 100여 편에 출연하여 연극배우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 드라마 ‘임꺽정’, ‘태조 왕건’, ‘왕과 비’ 그리고 영화 ‘창공에 산다’, ‘난파선’, ‘돌아온 님아’ 등을 합치면 생전에 30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선생을 목포가 낳은 뛰어난 연극인이라고 부른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배우임에 틀림이 없다고 확신한다.. 1966년과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하였다.
극단 ‘산울림’의 창립동인인 그는 드라마센터와 국립극단 창립 멤버, 극단 ‘신협’(新協) 대표를 지냈다. 말년에는 고향 목포로 내려와 목포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며 고향의 문화예술 발전에 헌신했다.
사업가로도 활동해 생전에 연극과 영화, 드라마 출연 외에도 전자회사 대표이사와 건설회사 런던지사장 등을 지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고대극회 후배인, 김대중 정부 환경부 장관을 지낸 연극인 부인 손숙 배우와 3녀가 있다.
김성옥 선생과 첫 동석은 서울 강남에 있는 ‘영산강’이라는 홍어집으로 기억한다. 당시 러시아에서 잠깐 귀국한 나는 고 김길호 선생과 친구 정종준이 출연하는 뮤지컬을 보게 되었다. 목포 출신인 김길호 선배가 술자리를 주선했다.
마지막 자리는 올해 6월 29일 목포에서다. 천승세 원작의 연극 ‘만선’을 보게 되었다. 선생은 그 연극의 예술감독이었고, 연출은 대학원에서 내 수업을 듣는 제자였다. 또 배우 중에도 대학원 제자가 있었다.
그날 선생과 나는 연극 쫑파티에서 마주 앉아 꽤 많은 술을 마셨다. 다시 뵙기로 했는데 선생의 건강이 좋지 않아 더 이상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구하게도 연극 <만선>과 선생에 대한 글을 블로그에 올리려고 했는데, 오늘 이렇게 올리게 되었다.
애석한 일이다. 목포연극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우리는 함께 쏟기로 했는데, 선생이 먼저 가셨다. 선생이 마지막으로 예술감독을 맡았던 작품 <그 남자의 연극>이 오늘과 내일 무대에 오른다. 개막 하루 전에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선생은 평소에 나에게 존댓말을 썼다. 나도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서로에 대한 지나친 존대가 우리 사이의 어떤 벽을 만든 것은 아닐까?
목포에 오늘도 눈이 또 내린다. 선생이 없는 목포에 무심한 눈발이 날리고 있다. 서울에서 누군가가 목포 봉황장례문화원을 찾아올 것이다. 그분과 함께 쓴소주 마시며 명복을 빌 생각이다.
김성옥 선배님!
김우진, 차범석, 김길호, 김성옥으로 이어지는 목포연극을 부흥시키겠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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