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구례에 갔던 연유를 말할 때가 되었다.
약 20여 일 전 격려의 시 한 편을 받았다. 짧고 간결하다. 전북대 교수 출신이신 원로시인 유응교 박사께서 보내오신 헌시조(獻詩調)였다.
고마움에 앞서 부끄럽고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리고 많은 고민을 했다. 어떻게 예의를 표현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바쁜 일정에 시일이 많이 지났다.
해를 넘길 수는 없다. 그래서 시인이 태어난 구례의 운조루를 찾았다. 운조루는 삼수부사를 지낸 시인의 7대조 유이주(柳爾胄) 선생이 경상도 대구에서 이주하여 영조 52년(1776) 구례의 명당 터에 지은 고택이다.
운조루는 일종의 당호(堂號)인데, 원래는 사랑채 이름으로 ‘구름 속의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이다. 도연명의 시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지로 돌아오네[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의 구절에서 첫머리 두 글자 ‘운조(雲鳥)’를 취해 ‘운조루(雲鳥樓)’라는 사랑채의 이름으로 삼았다.
건축 당시, 78칸의 거대한 저택은 국가민속자료 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안채는 지금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78칸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운조루에는 참으로 고귀한 베품의 정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숨어있다.
이 저택의 행랑채에는 쌀이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원통형 나무 뒤주가 있다. 진품은 현재 운조루 유물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아랫부분에 쌀을 꺼내는 마개가 있고, 그 위에 타인능해(他人能解)의 글씨가 있었다.
누구나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운조루 주인이 배고픈 사람은 누구든지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즐겨 쓰시는 말이 있다. 왕대밭에 왕대가 난다. 그런 조상을 모신 시인의 심성은 그의 동시집 <거북이 삼 형제>에 잘 드러나 있다.
<거북이 삼 형제>에 실린 ‘타인능해’의 시를 먼저 소개한다.
타인능해
유응교
고향 집
운조루의
행랑채 들어서면
쌀독에
쓰여 있는
네 글자 타인능해!
누구나
쌀을 가져가
밥을 짓게 했대요
스타니스랍스키가 연극을 “배우가 무대 위에서 ‘인간의 정신생활’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인간의 정신생활’을 ‘나 교수의 창’이란 공간에서 사진과 글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운조루에는 힘들었던 시절의 이런 구휼(救恤)의 정신이 숨어있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아름다운 인간의 역사가 살아있는 것이다.
카톡방에서만 뵈었던 시인이 보내주신 시를 운조루의 숨결과 함께 사진 그대로 올린다.
나상만
유응교(명예교수, 시인)
나만의
시선으로
사진 속 글을 남겨
상대의
가슴 깊이
감동을 전해주니
만인이
우러러보며
환호하고 즐기네.
운조루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더 널리 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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