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썸네일형 리스트형 광한루 단상 광한루(廣寒樓)는 역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 호남 제일의 누각이다. 광한루에는 수많은 역사가 흐르고 있고, 그 역사의 중심에는 인물들이 있다. 아쉽게도 광한루는 에 묻혀 광한루를 최초로 세운 황희(黃喜, 1363~1452)를 비롯하여 숱한 인물들이 춘향의 치마폭에 갇힌 셈이 되었다. 그래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하는 것일까(?). 청백리 정승으로 유명한 황희는 세종 때 무려 18년간 최장수 영의정으로 봉직했다. 그는 사후 남원부원군(南原府院君)으로 책봉됐다. 개경에서 태어나고 한양에서 생활한 황희에게 왜 남원부원군이란 군호가 붙었을까.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하려 하자 당시 이조판서 황희가 반대했다. 처음엔 교하(파주)로 유배시켰다가 태종은 너무 가깝다 하여 다시 남원으로 보냈다. 황희는 3년간..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