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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압해정씨를 아시나요? 6월 10일의 메모 * 압해정씨의 도시조 대양군의 묘소를 참배하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남의 조상 묘소까지 함께 가자는데 군말없이 응해주는 아내가 고마울 뿐이다. * 압해도에서 촬영을 마치고 병어축제가 열리고 있는 지도로 갔다. * 실망이다. 병어축제에 병어가 없다. 신안군에서 개최된 축제에서 최악이다. * 하지만 갯벌에서 생명의 신비를 확인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 지도의 석양은 압권이다. * 신안군은 관광콘텐츠가 비교적 탄탄하다. 퍼플섬, 동백꽃축제, 수국축제, 튤립축제는 그 성공적 사례이다. * 신안군은 축제에 문화와 역사를 접목시켜야 할 시기가 되었다. * 동백꽃축제는 꼭 시낭송 프로그램이 추가되어야 한다. * 압해도가 본관인 압해정씨의 인적자원과 역사자원은 신안군의 보물이자 자산이다. * .. 더보기
광한루 단상 광한루(廣寒樓)는 역사적으로나 미학적으로 호남 제일의 누각이다. 광한루에는 수많은 역사가 흐르고 있고, 그 역사의 중심에는 인물들이 있다. 아쉽게도 광한루는 에 묻혀 광한루를 최초로 세운 황희(黃喜, 1363~1452)를 비롯하여 숱한 인물들이 춘향의 치마폭에 갇힌 셈이 되었다. 그래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고 하는 것일까(?). 청백리 정승으로 유명한 황희는 세종 때 무려 18년간 최장수 영의정으로 봉직했다. 그는 사후 남원부원군(南原府院君)으로 책봉됐다. 개경에서 태어나고 한양에서 생활한 황희에게 왜 남원부원군이란 군호가 붙었을까.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하려 하자 당시 이조판서 황희가 반대했다. 처음엔 교하(파주)로 유배시켰다가 태종은 너무 가깝다 하여 다시 남원으로 보냈다. 황희는 3년간.. 더보기
압해도 ​ 목포가 좋은 이유는 많다. 그중의 하나가 주위에 섬들이 많다는 점이다. 그 첫 번째로 압해도를 소개한다. 신안군(新安郡) 압해도( 壓海島). 압해도는 전라남도 신안군 압해읍에 있는 섬으로 신안군청이 있는 곳이다. 2008년 6월 압해대교가 완공되면서 육지와 연결되었고, 2012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004개 신안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 압해도다. 목포 북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이 섬은 누를 압(壓) 자를 쓰고 있다. 섬의 지세가 삼면으로 뻗어 나가면서 바다와 갯벌을 누르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압해도로 부르게 됐다는 말이 있다. 어쨌든 큰 바다로 나가기 전에, 목포 쪽에서 출발했을 때 '바다를 제압‘하는 느낌이 든다. 압해도에는 국회의장을 역임한 정세균 총리를 비롯한 압해 정씨(押海 丁氏)의 도시.. 더보기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 내 고향 삼향(三鄕)이 낳은 초의선사는 조선 최고의 천재 다산 정약용을 24세 때인 1809년 강진 다산초당에서 혜장 스님을 통해 처음 만났다. 초의는 다산을 평생 스승으로 모시며 유서(儒書)와 시학(詩學)을 배웠다. 초의는 1813년 다산의 초대를 받았다. 그러나 비가 내려 장삼 자락이 젖어 초당을 방문하지 못했다. 다산에게 가지 못한 초의는 안타까운 마음을 다음과 시로 표현했다. “슬프도다. 이 작은 몸 하나 나에게 선인의 경거술(輕擧術)이라도 지었더라면 빗속으로 산 넘어 날아갔을 텐데.” 다산을 극진히 모셨던 초의의 또 다른 시가 있다.‘탁옹 선생에게 드림’이란 시다. 탁옹은 다산의 별호(別號)이다. 부자는 재물로 사람을 떠나보내고 어진 이는 말로써 떠나보내네. 이제 선생께 하직하려 하지만 마땅히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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