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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나철과 대종교 우리는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홍암 나철은 왜 대종교를 중광하였는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단군은 어떤 존재인가? 홍암 나철 선생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무엇인가? 나는 우리 민족과 인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새벽은 밝아오는데, 아직도 글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네. 29세 때 문과에 장원급제한 나철은 승정원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으로 벼슬을 시작해 왕의 곁에서 밤낮으로 머물렀다. 여기에 중요한 사실이 있다. 홍암이 후에 대종교를 창시하는 사상적 토대를 이룬 것은 그때의 독서가 큰 몫을 하게 된다. .고종은 관복과 말을 하사할 정도로 홍암을 총애했다. 국운이 기울자 홍암이 벼슬에서 물러나려고 하자 고종은 세 번이나 반려한 끝에 허락했다. 후에 징세서장(徵稅署長)으로 임명했지만 거절하고 고향 벌교로.. 더보기
신단수(神壇樹) 2023 - 작품 123 에 의하면 환웅은 아버지 환인의 허락을 받아 천부인 3개를 받아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의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이를 신시(神市>라 했다. 신화에 등장하는 나무는 원시사회 이래의 수목(樹木) 숭배신앙과 연결된다.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매개역할을 한다. 삼한 시대의 소도(蘇塗)는 단군신화의 신단수에 나타난 수목 신앙이 변형된 개념으로 천신(天神)이 내려오는 계단이나 그 사는 곳, 또는 신성한 지역을 뜻한다. 한민족의 창세신화가 기록된 의 마고성(麻姑城) 이야기에 의하면 인류는 영적인 삶을 살다가 포도를 따 먹은 후 육체적인 감각으로 살면서 현재의 물질문명을 만들었다고 한다. 부도지에 따르면 단군은 인류가 마고성을 쌓은 후 하늘나라에 부합하는 부도(符都)를 처음으로 건설하였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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