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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룡산

여름 동백꽃 아시나요? 새벽에 일어나 노각나무꽃 사진만 올려놓고 무안공(務安公)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새 휴대폰에 대한 신고식이다. 덕분에 일출을 보고 몇 컷 건질 수 있었다. 전망 좋은 우리 아파트 입구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 나무에 하얗게 예쁜 꽃이 피어있다. 워낙 높은 곳에 꽃이 피어 빅 크로즈업은 할 수 없었는데, 마침내 새 기기의 덕을 톡톡하게 보았다. 이 나무의 이름은 노각나무이다. 소박하면서 은은한 꽃이 피는 이 나무는 비단결같이 아름다운 껍질을 갖고 있어 금수목(錦繡木)이라고 부른다. 원래는 녹각(鹿角)나무인데, 부르기 좋게 노각나무로 변했다고 한다. 이름에 대한 이설(異說)이 많다. 내 눈엔 나무 무늬가 사슴뿔을 닮았다. 배롱나무처럼 생겼는데, 자세히 보면 무늬가 사슴뿔 모양이다. 이 나무의 꽃이 참.. 더보기
주룡의 설경 주룡나루와 주룡마을의 설경 올립니다. 주룡마을은 무안공의 후손 금호공 나사침과 그의 아들들이 잠들어 계신 곳입니다. 주룡마을은 나사침의 장자 소포공 나덕명이 최초로 입향한 마을입니다. 주룡나루는 소포공이 개설한 나루이며 소포공이 이곳에 적벽정을 짓고 자연을 벗삼아 노년을 보냈던 곳입니다. 주룡나루 앞 영산강은 옛날 '적벽강'으로 불리웠으며, 왜적의 배에 끌려가던 금호공의 며느리와 딸이 이곳 강물에 투신했던 역사적 공간입니다. 주룡나루에 있는 적벽은 초대 무안현감 무안공이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이를 계기로 '일로'라는 명칭을 작명하게 됩니다. 노인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어서 '일로'라는 작명을 했다고 합니다. 올해의 마지막 날에 주룡나루와 주룡마을의 설경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 .. 더보기
갈룡산(渴龍山) 설경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며 내년을 설계해 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일을 하셨으며, 어떠한 일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셨나요? 큰 보람은 없더라도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작은 의미라도 찾으면서 살아오셨다면 알찬 한해였다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결단의 시기를 맞곤 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어디에서 할 것인가? 결정이 내려지면 이사를 하게 됩니다. 저도 지금까지 30번 이상은 이사를 했습니다. 무안, 목포, 무안, 광주, 목포, 서울, 광주, 전주, 부산, 서울, 모스크바, 서울, 로스엔젤레스, 서울, 광주 그리고 목포. 일 년 이상씩 살았던 지역만 해도 꽤 됩니다. 그러나 한 지역에서의 이사, 그리고 몇 개월씩 체류했던 도시를 합치면 40.. 더보기
주룡에 고하다 http://www.mua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2792 “초대 무안현감 무안공 나자강을 찾아가다.” - 무안신문 [무안신문=김수지 기자] 무안문화원(오해균 원장)이 2021 무안 역사문화자원 발굴 및 교육프로젝트 일환으로 실시하는 10월 답사가 지난 10월30일 일로 주룡마을 일원 및 나주 금호사 등지에서 진 www.muannews.com 위를 클릭하면 기사 전문이 나옵니다. 새벽에 주룡나루, 주룡마을을 거쳐 두 선산을 찾았습니다. 금호공을 비롯한 선조들이 걸었던 발길을 나름대로 예상해 보며 갈룡산에 올랐습니다. 녹사공과 무안공 할아버지께 나주 도선산에 갔던 얘기도 말씀 드렸습니다. 무안공의 이야기가 무안신문에 실리니 기분이 좋네요. 저야 수천 만부를 자.. 더보기
청호리(清湖里)의 전설 오늘도 주룡에서 새벽을 맞이하였습니다. 주룡마을 앞에 있는 갈룡산(渴龍山)은 용이 승천하는 형국으로 원래의 지명은 청호리(靑湖里)였으나 “용은 맑은 호수의 물을 먹어야 한다” 하여 ‘맑은 호수’라는 의미의 청호리(清湖里)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저의 선조 무안공이 잠들어 계신 갈룡산 앞에는 ‘청호지(靑湖池)’라는 저수지가 지금도 있습니다. 야사(野史)에 의하면 용이 먹는 물이 맑아야 하므로 저수지 위쪽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것을 금기시하였고, 또 저수지 축조 이전부터 갈룡산에 있었던 절도 옮겼다고 하며, 저수지 상류에서는 농사도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룡마을에서 태어난 나기옥 문중 재무이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최근까지도 주룡마을 주민들은 ‘용이 먹는 물’이라 하여 해당 저수지의 물을 식수로 사용했으며, 이.. 더보기
주룡의 역사 1 - 무안공(務安公) 나자강(羅自康) 주룡의 역사 (1) - 무안공 나자강 “조상의 역사를 잊은 씨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러한 일념으로 나의 뿌리를 찾아 호남의 산천을 구석구석 누비고 있다. 광주에 거주할 때는 나주를 집중적으로 다녔다. 목포에 내려오면서 나는 ‘주룡나루’가 있는 무안군 일로읍에 전력을 쏟고 있다. 아니 이곳이 가까운 연유로 목포에 내려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무안군의 역사는 무안공(務安公) 나자강(羅自康)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를 왜 무안공이라고 할까? 그리고 일로 지명의 역사를 소개한다. 무안공은 이조 태종(太宗)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통헌대부(通憲大夫)로 무안현감(務安縣監)과 의주부윤(義州府尹)을 역임하였다. 초대 무안현감과 공석(空席)인 나주목사(羅州牧使)를 권섭(權攝)하며 나주의 서쪽 강변에 집터(家基)를 정하여.. 더보기
갈룡산 가는 길 백잠일기 초(抄)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주룡은 다른 곳과 다르게 일출 기미가 보였다. 은적산에 운무가 깔리며 하늘이 다시 어두워진다. 상사바위 쪽만 윤곽이 뚜렷하며 나머지는 온통 운무에 젖었다. 철교 위의 하늘도 다시 회색빛으로 변하며 비가 내릴 기세다. 6시 40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거세지며 영산강의 물결이 바다처럼 거칠어진다. 땅에 떨어진 능소화가 애처롭다. 우산을 들 수 없어 용호정(龍湖亭)으로 몸을 옮긴다. 사람들은 족보 없는 이 정자를 더 선호한다. 강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주룡나루의 아름다움 속에는 아픈 역사도 숨어 있다. 며느리와 딸을 강물에 잃은 금호공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내와 여동생의 시신을 강 속에서 건져낸 반계공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제수씨와 여동..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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