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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기고

나는 '이명박근혜’ 정부의 '레드리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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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연극인의 회상

                                                         글쓴이: 나상만

 

 

       나는 '이명박근혜' 정부의 '레드리스트'였다.

 

    이승만 정부 시절에 태어난 필자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박정희 시대부터 연극을 시작했지만 그때는 배우로 활동했고, 작가 겸 연출가란 타이틀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전두환 시절부터다.

 

    희곡 <초신(超神)의 밤>은 광주시립극단 연출자로 활동하던 1983년에 지역신문 창간기념 문예공모에 가작으로 턱걸이 입상하여 연재된 작품이다. 원제는 <()은 감옥에 있다>였는데 종교계의 반발을 고려하여 제목을 바꿨고, 광주 초연과 목포 공연을 거쳐 마침내 863월 서울의 '실험극장'에진출했다.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시종일관신은 감옥에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공연윤리워원회에서 작품을 수정하지 않으면 공연 허가를 내릴 수 없다는 판정이었다.“‘신이 감옥에 있다는 주장은 전두환 통치권자인 전두환 대통령을 부정하는 것이다는 억지였다. 언론까지 통제하던 군부독재 시대의 촌극이 아닐 수 없다. 이 희곡은 후에 <혼자 뜨는 달>이라는 소설로 재탄생하여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중국을 비롯한 대만과 홍콩 등 중화권(中華圈)에도 번역되어 찬사를 받고 있다.     


   ‘미투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다. 차기 유력 대선후보가 성추문과 연계되어 도지사직을 사퇴했고, 서울시장 후보도 출마 의지를 접거나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는대북문제와 함께미투운동이뜨거운 감자로 부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인의사생아문제를 다루면서 현대인의가면을 발가벗긴 희곡으로는 <죽음을 잊은 그대에게>가 있다. 이 작품도 필자가 20대에 쓴 작품인데, 공연은 2004년에야 이루어졌다. 월남전 참전용사과 정치인의 사생아이 자살소동을 펼치면서 신의 존재를 묻는 블랙코미디다. 유일한 단막극인 이 작품은 광주 민주화운동을월남전에 비틀어 군부독재에 항거하고 정치인들의위선을 조롱하고 있다. 정치권에 미투쓰나미가 불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30년 전에 예고했던 것이다. 불안에 떨고 있는 정치인들이 필자의 희곡집을 읽고 수신제가(修身齊家)했다면 오늘의 근심은 없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해 본다.

 

    선거철만 되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지역감정문제다. 필자의 희곡 <우덜은 하난 기라>는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눈치 빠른 분들은 아시겠지만우덜우리들의 전라도 사투리며, ‘하난 기라하나다라는 의미의 경상도 사투리다. 호남 출신인 필자는 광주 출신의 배우를 데리고 적지(?)인 부산으로 내려가 작품을 쓰고 연출을 했다. 부산극단오르기가 제작하고 부산기업 ()재능교육과 호남기업 금호그룹이 후원했으며, 경북, 부산 출신의 배우들이 출연하여 영호남 화합의 무대를 만들었다. 부산에서 출발, 광주를 거쳐 서울에서 장기 공연에 돌입하고 전국을 순회한 필자의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연습단계에서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일으켰다. 지역감정이 극심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호남 남자와 영남 여자의 슬픈 사랑을 다루고 있다. 일상, 군대, 프로야구, 선거판 등에서 벌어지는 지역갈등의 에피소드들을 다양한 연극적 장치로 풀어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백미는사자 청문회(死者聽聞會)’라는 장면인데, 여기에는 김유신(金庾信), 왕건(王建), 정철(鄭澈), 박정희(朴正熙)인형으로 등장하여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다. 신라, 고려, 조선, 현대를 대표하는 지역갈등의 역사를 조망하며 국민들의자각을 호소하고 있다. 극중 배우의 입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광활한 만주 땅을 잃고서

    손바닥만 한 땅덩이마저

    반으로 쪼개진 한 맺힌 이 땅을 그 누가 분열시켰는가!

    단일민족의 후예임을 망각하고

    피로 얼룩진 우리의 역사.

    지배자는 국민을 선동하고

    우매한 국민들은 지배자의 정권놀이에 희생되었던 파벌의 역사

    깨어라 국민들이여!

    지배자의 시대는 가고

    이 땅은 민주의 꽃이 피어야 한다.

 

    노태우 정부시절, 감옥에 갈 각오로 쓴 작품이다. 전두환이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 공연된 작품이니 파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나 필자에게 정부의 입김이 없었던 것은 이 작품이 워낙 많은 매스컴의 집중을 받았기 때문이다. TV의 퀴즈 프로그램에서 이 작품을 다루었고, 어떤 신문은우덜은 하난 기라라는 타이틀로 시리즈 기사를 게재할 정도였다. 후에 이 작품은 필자가 지도교수였던 경기대학교 연기학과의 졸업공연으로 채택되어 북경의 중국연극대학(中国戏曲学院) 초청을 받아 공연되는 영광을 얻기로 했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최악(?)의 작품은 희곡 <박통노통>이다. 이 작품은 미국에 체류하던 시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는 순간, 영감을 받고 쓴 작품이다. 미국에서 급거, 귀국하여 작품을 쓰면서 극장을 대관하고 배우들과 연습에 들어갔다.‘박통노통이 저승에서 만나 대결하고, 갈등하며 결국 화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는 공연 한 달을 남기고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는 돌발 사태가 일어났다. 작품의 수정이 불가피했다.

 

    작가는 극중박통을 통해 DJ의 서거 소식을노통에게 알린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화해의 단초(端初)를 풀기 시작한다. 연극 속에서 박통과 노통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박통: 자네 고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다른 얘긴데, 김대중 대통령이 며칠 전 이곳으로 오셨네.

   노통: 김대중 대통령께서요?

   박통: 그렇다네. 솔직히 말해 내가 그분한테 못할 짓을 많이 했어. 우리 큰딸이 내 대신 사과를 했고, 또 병문안도 갔다네.

   노통: 참으로 큰 족적(足跡)을 남기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미래를 크게 걱정하신 분입니다.

   박통: 인정하네. 난 그분의용서는 최대의 용기이고 관용은 최대의 정치 덕목이다는 말에 감동을 받았네.

   노통: 그렇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민주화 운동의 배후자로 지목, 내란죄로 사형을 언도한 당사자도 용서하신 분입니다.

   박통: 그래. 부끄러웠네. 그분은 생의 마감을 목적에 두고도 병상에서 화해와 용서의 계기를 마련하셨네. 언젠가 우리도 그분을 만나겠지. 그 전에 우리가 먼저 화해를 하고 그분을 뵙자고.

   노통: 찬성입니다.

 

    희곡 전체를 읽지 않거나 연극을 보지 않은 분들이 섣부른 오해를 할 여지도 있다. 편파적 시각을 갖고 작품을 쓰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필자는 그 누구를 옹호하거나 특정 정당을 염두에 두지 않고 희곡을 썼다. 오직 민족의 미래와 국민만을 생각하고 작가적 양심을 견지(堅持)하려고 노력했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을 꼭 소개하고 싶다.

 

   (박통과 노통 마주본다.

    두 사람, 눈가에 물기가 흐른다.

    그들, 자기도 모르게 껴안는다.

    잠시 후)

 

   박통: 이해하게.

   노통: ......

 

    (박통, 총을 꺼낸다.

     하늘을 향해 총을 한 발 쏜다.)

 

   박통: 이 총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네. 자네가 알다시피, 나 또한 그 희생양이 되었지. 나는 저승의 구석구석을 20년 동안 찾아다녔네. 나를 침몰시킨 그 원수를 찾아. 그러나 난 지금, 보복이 아닌 용서를! 원수를 사랑하라는 신의 음성을 들었네. 자네를 통해서 말이야.

   노통: 선배님!

박통: 그런데 말일세, 나는 이제 이 총을 가장 아름답게 사용하고 싶네.

   노통: ?

   박통: 자네의 모든 것을 이해하네. 그러나 한 가지. 한 가지만은 이해할 수 없네.

   노통: 무슨 말씀이신지?

   박통: 자살은 용서할 수 없네. 아니 자네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네.

   노통: 저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고요?

   박통: 그렇다네. 한국이 자살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어. 그런데 공인 (公人)인 자네가, 한 나라를 다스렸던 자네가...... 나는 자네의 그런 죽음을 절대 인정할 수 없네. 자네를 이 총으로 쏘겠네.

   노통: 선배님!

   박통: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영혼과 인간 육체의 숨결에 대한 권한 (權限)은 오직 신()에게 있네. 자네는 그런 신에게 반기(反旗)를 들고 자살을 택했네. 신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노통: 저를 쏘는 행위도 신에 대한 모독이 아닙니까?

   박통: 신에게 용서를 구했네.

   노통: 선배님!

   박통: 각오가 되었는가?

   노통: 선배님!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박통: 자네를 다시 탄생시키는 방법은 이 길밖에 없네. 이것이 이곳에서의 자네와 나의 숙명일세. 난 그걸 깨우쳤네. , 시간이 없네.

 

   (박통, 총을 겨눈다.

    노통, 초연하게 자리를 잡고 선다.)

 

   박통: 자네를 이해하네. 인정하는가?

 

    (노통이 고개를 끄덕인다.)

 

   박통: 눈을 감게.

 

    (노통, 눈을 감는다).

 

   박통: 우리 다른 세상에서 다시 만나서...... 한잔하세.

   노통: 사랑합니다. 선배님!

 

   (박통, 총을 겨눈다. 방아쇠를 당긴다.

    총성과 함께 암전!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어 엔딩 뮤직이 흐른다.)

 

    필자의 다섯 번째 희곡은 <멍키열전>이다. 원래 이 희곡은 필자가 교수로 재직했던 모스크바 슈우킨 연극대학 창설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슈우킨대는 연기교육에 있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러시아 연극의 자존심으로 20세기 연극예술을 정립한 스타니스랍스키의 유일한 제자인 박흐탄코프(Eugene Vakhtangov, 1883 - 1922)가 창설한 대학이다. 슈우킨 출신과 그 제자들로 구성된 배우들의 연기로 세계연극의 본산(本山)  모스크바 공연을 통해서 한국연극의 저력을 과시하고픈 개인적 열망도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연은 무산되었다. 정부와 예술관련 기관은 이 공연의 연극교육사적 의미에 관심도 없었고, 문화 권력을 쥐고 있는 연극인들이 필자에게 우호적일 수 없었다

 


    필자의 작품은 메시지가 강하다는 평을 받는데, 주로 '권력'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과 을()의 관계를 집요하게 천착(穿鑿)해 왔다.“연극은 시대의 정신이고 사회의 거울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이명박근혜정부는 철저하게 필자를 외면(外面)했다. 그들의 눈에는 자신들을 겨냥한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권력을 위임 받은 사람들은 외면을 넘어 배제(排除)라는 극단적 공모(共謀 )를 자행하기도 했다.



    한국무대을 타락시킨 모씨(某氏)

가 자신을블랙리스트 1라고 자칭한 인터뷰를 읽었다. 성추행에 연류된 연극인들이 두 정부에서  지원받은 금액이 한 해에만도 수억을 초과한다. 그런데도블랙리스트운운하며 뻔뻔함의 극치로 시류에 편승하다미투운동에 발목이 잡혔다. 국립극장과 연결된 연출자도 한두 명이 아니다. 권력에 기생하여 온갖 혜택을 받더니 급기야는 한국연극을 나락(奈落)에 빠트리고 말았다.


   나는 레드리스트(Red List)였다.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진 않다. 지원금으로 연극을 제작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판단으로 얻은 결론이다. 분명한 것은 나는이명박근혜가 빨간 줄을 그은 연극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다룬 작품을 썼고 연출한 나를 이명박 정부가 곱게 볼 리 없다. 자신의아버지를 비판하고세월호문제를 무대에서 최초로 언급한 필자를 박근혜 정부가 좋아할 리 없다.‘518’을 연극무대에서 최초로 거론한 연극인을 '독재정권'과불량정권이 작품 활동을 방해하지 않은 것만도 기적이다.


   310일은 대한민국 문화를 침몰시킨 대통령이 탄핵당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참회록'을 써야 할 사람이 '회고록'을 내며광주를 왜곡하고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이제 곧 또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검찰청 앞에서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다. 참으로 슬픈 나라다. 대통곡할 일이다.

 


    작품 속의 대사(臺詞)가 공허해진다. 시대를 이끌어온연극의 힘이 이처럼 무력해지는 것일까! 그래도 연극을 해야 한다. 그래도 글을 써야 한다. 국민은성공한 대통령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이 글을 쓰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연극 <초신의 밤>의 여자 주인공수녀의 마지막 대사를 다시 음미해 본다.

   

   신의 감격에 찬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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