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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터뷰> ‘혼자 뜨는 달’ 저자 나상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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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는 꿈의 세상 만들고 싶어”<인터뷰> ‘혼자 뜨는 달’ 저자 나상만 교수

나몽원 기자lsljung99@naver.coml승인2016.12.16 10:30

▲ 장편소설 ‘혼자 뜨는 달’

장편소설 ‘혼자 뜨는 달’은 1990년 국내에서 초판 발행된 이후 지금까지 300만부가 팔렸다. 국내 문학계의 핫이슈였다.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의 손엔 그의 소설이 쥐어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씩 광고가 나왔고 출판계에서는 그의 소설이 늘 얘깃거리였다. 출판사에서는 작가와 계약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언론, 방송사도 작가 인터뷰를 위해 며칠씩 기다려야 했다. 소설은 인기를 구가하며 영화화 됐다. 또한 2004년엔 중국 청년출판사에서 ‘애적어법’이란 제목으로 출판돼 초판 4만부, 재판 4만권이 판매됐다. 장나라, 전진이 광고모델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러나 책만 흥행한 것은 아니다. 나상만 작가는 연기교육의 바이블인 스타니스랍스키 시스템을 한국에 정착시켰다. 그는 지금 리더십 아카데미 활성화,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은 물론 1만평 가까운 가평 유명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스타니스랍스키 아시아센터와 리허설극장을 만드는 일도 준비하고 있다.

 

▲ 나상만 교수

 

나상만 교수는 성격이 좋다. 웃음이 많고 명랑하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한 청년 같다. 겨울같지 않은 포근한 날씨에 나 교수를 독립문역 근처에서 만났다. 털털한 옷차림, 격의 없이 먼저 악수를 청한다. 베스트셀러 ‘혼자 뜨는 달’을 집필한 나상만 교수의 첫 느낌이다. 낮시간이지만 소주를 시켰다. 즐겁게 이어진 취중진담. 단골집이어서인지 쉴 새 없이 반찬이 나온다. 나 교수는 혼자서 술을 따라 마실 정도로 애주가다. 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문인으로서의 풍모는 갖춘 것. 소설 얘기를 꺼내자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당시 엄청났지요. 인쇄되기 바쁘게 책이 나갔으니까요. 지금 300만부 판매고를 올리라하면 힘드리라 봅니다. 제 원고를 달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90년대엔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던 시절이었는데 젊은이들의 고뇌와 유머, 순수한 사랑이 독자들의 반응을 이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나상만 교수의 장편소설 ‘혼자 뜨는 달’은 그의 나이 20대 초반에 만들어졌다. 대학 1학년 때 초고가 나왔으니 누가 보더라도 천재성 있는 글솜씨였다. 10년 뒤 1988년 당시 유명출판사인 다나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책이 나오자마자 110만부가 팔려나갔다. 문학계에 대 이변이자 큰 수확이었다.

“지금에야 편하게 웃으면서 말하지만 그때 원고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어요.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 제게 벌어졌던 것이지요. 다행히 주된 내용을 기억하고 있어서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때라 긴장된 순간이었지요.”

나 교수는 기억을 되살려 원고를 차분히 써내려갔다. 그렇게 해서 1권, 2권, 3권이 쓰여졌고 4권과 5권은 러시아 소치와 모스크바에서 끝냈다. 말이 장편 5권이지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틈나는 대로 원고를 팩스로 전송했다. 그렇게 해서 원고는 쌓여갔고 장편 5권의 명작이 태어났다.
 

유명산 자락 8천여 평에 리허설극장 설립 계획

나 작가는 문학인이기 전에 연극계 출신이다. 연극과 문학을 병행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했지만 연극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1991년 8월,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다.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때 책을 더 내고 영역을 넓힐 수 있었지만 머무는 삶에 연연해 않고 갈망하던 동토의 땅으로 떠났다.

열정의 모티프는 러시아의 연출가 겸 배우 스타니스랍스키였다. 스타니스랍스키는 모스크바에서 모스크바예술극장를 설립하고 사실적인 연극기법으로 무대를 시적 상징으로 높인 인물. 그가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문학으로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저는 연극부터 시작했어요. 대학에서 전공도 했고요. 78년 극단 ‘자유’에서 연기도 하고 배우들 무술지도도 했습니다. 현대무용도 했고요. 특히 당시엔 남자무용수가 별로 없어서 제 역할이 많았습니다. 책이 잘 팔릴 즈음부터 95년 말까지 러시아에서 생활했는데 스타니스랍스키와 연극 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스타니스랍스키는 제게 큰 스승이었습니다.”

나 교수는 대학 1학년생 때부터 극단 ‘자유’에서 활동했다. 그 무렵 추성웅, 박정자, 박웅 등 쟁쟁한 실력의 배우들이 출연하고 있었다. 더 있고 싶었지만 그는 한국에서 러시아로 눈을 돌렸다.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했던가, 그는 러시아에서도 끊임없이 활약했다. 슈우킨 연극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연극도 하고 러시아 연극계의 최고의 거장들과 교우했다.

그는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경기대에 스타니스랍스키 연기원을 만들었고 현재는 제자들이 꾸려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한국과 러시아뿐만 아니라 대만,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중국까지 지경을 넓히고 있다. 지난 2004년엔 중국 청년출판사에서 ‘애적어법’이란 제목으로 출판돼 베스트셀러 7위까지 올랐다. 제자 장나라, 전진을 광고모델로 활용한 전략이 만리장성을 뚫은 것.

나상만 교수는 현재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정경아카데미에서 스타니스랍스키 시스템과 리더십을 융합한 스타니스랍스키 리더십을 가르치고 있다. 내년 3월엔 새로운 계획도 기다리고 있다. 대구시립극단과 함께 연극 ‘멍키열전’을 무대에 올린다. 전 세계 문학작품에 나왔던 원숭이 주인공들을 통해 인간세계를 풍자하며 해학을 곁들인다.

중장기적인 면에서는 가평 유명산 자락의 유명산밸리와 파크밸리 8000여 평 부지에 리허설극장을 만들고 천막연극제를 통해 전 세계 연극인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축제의 무대를 만들 생각이다.

“연극에 대한 사랑을 가평 유명산밸리에서 펼쳐가려고 합니다. 미국에 있던 보물 1호인 8000권의 전문서적을 이곳으로 옮겼어요. 이곳에 연극인을 위한 좋은 리허설 무대를 짓겠습니다. 대학원대학교도 만들고 학생들은 물론 연극배우들이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는 꿈의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다음은 그와의 미니인터뷰 1문1답이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예술 창작에만 전념할 수 없는 사회 구조가 아쉽습니다. 작품 하나도 만들기 힘들지만 만든 작품이 흥행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극히 힘듭니다. 돈이 되지 않는 예술을 40여 년간 한다는 것 자체가 가족에게 미안하고 힘들었습니다.”

 

 

-‘혼자 뜨는 달’ 제목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20개의 작품 제목을 제가 제시했고 그걸 출판사에서 선정하게 됐지요.”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로 남고 싶은지.

“특별하게 내 존재를 남기고 싶진 않습니다. 그냥 내가 걸어온 길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러시아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는.

“러시아에서 스타니스랍스키연극상을 제정하고 슈우킨 연극대학에 한국스튜디오를 만들어 한-러 문화교류의 발판을 만들었고 한국의 연극교육을 주도하고 많은 교육자를 양성했습니다, 그런데도 한때는 내가 러시아에서 한국 학생들에게 북한의 사상을 전파하고 있다고 어떤 정부 조직이 나를 조사차 찾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뮤지컬은 어떻게 진행할 예정인지.

“원작 소설이 중화권에도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유커들을 겨냥한 글로벌 뮤지컬로 제작할 계획입니다. 관심 있는 단체나 지자체와의 공동제작으로 스타 제자들을 활용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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