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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공

내 마음의 호수 연기자는 무대에서 ‘그 자신’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제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도 절대로 ‘햄릿’이 될 수 없다. 나 + 햄릿 = 새로운 햄릿. 연기자는 작가가 창조한 ‘등장인물’을 ‘자신만의 독특한 새로운 인물’로 재창조해야 한다. 이것이 연기예술의 대가 스타니스랍스키의 견해이고,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진도 마찬가지 아닐까? 신이 창조한 자연을 나 자신의 독특한 시선으로 새롭게 담는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 ‘그림’이야 많겠지만 ‘사진’은 행운이 따라야 한다. 대상(對象)이 항상 그 자리에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유달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영산강도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아름다운 호수를 보았다. 이 호수가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지금은 바다다. The Lake i.. 더보기
갈룡산(渴龍山) 설경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며 내년을 설계해 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일을 하셨으며, 어떠한 일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셨나요? 큰 보람은 없더라도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작은 의미라도 찾으면서 살아오셨다면 알찬 한해였다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결단의 시기를 맞곤 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어디에서 할 것인가? 결정이 내려지면 이사를 하게 됩니다. 저도 지금까지 30번 이상은 이사를 했습니다. 무안, 목포, 무안, 광주, 목포, 서울, 광주, 전주, 부산, 서울, 모스크바, 서울, 로스엔젤레스, 서울, 광주 그리고 목포. 일 년 이상씩 살았던 지역만 해도 꽤 됩니다. 그러나 한 지역에서의 이사, 그리고 몇 개월씩 체류했던 도시를 합치면 40.. 더보기
갈룡산의 겨울 * 오늘의 이야기를 '한 개인의 씨족사'로 치부하지 마시고, "호남선비의 원류를 찾아가는 여정의 한 부분"으로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습니다. 무안공 자강 할아버지의 부르심이 있어서 갈룡산에 다녀왔습니다. 주룡나루에 도착할 때부터 거짓말처럼 비가 멈췄습니다. 갈룡산에 올라 녹사공, 무안공, 반계공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청호지(淸胡池)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청호지는 갈룡산 앞에 있는 저수지입니다. 가뭄이 들 때도 물이 마른 적이 없고, 지금까지 인명사고는 물론, 단 한 마리의 동물도 빠져 죽은 적이 없는 저수지라고 합니다. 주룡마을과 망모산에도 다녀왔습니다. 금호공 할아버지는 물론 그 후손들의 묘소도 차분하게 살폈습니다. 오늘의 가장 큰 소득은 정암(靜庵) 조광조(.. 더보기
금사정과 천연기념물 동백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은 많다. 그러나 동백나무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예는 나주 금사정이 유일하다. 금사정(錦社亭)은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조광조의 죽음 이후 그와 뜻을 함께했던 나주 출신 선비들 11인이 고향으로 돌아와 '금강계'를 결성하고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지은 정자이다. 금사정 안에는 금사정 제액과 더불어 김만영(金萬英)의 '금강중수계서(錦江重修稧序)'와 나동륜(羅東綸)의 '금강정중수상량문(錦江亭重修上樑文)' 나정규(羅錠奎)의 시 등이 걸려 있다. 이곳의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동백나무 가운데 가장 굵고 수령도 가장 오래되어 천연기념물 515호로 지정되었다. 이 동백나무와 금사정을 말하기에 앞서 전라도 유학자들의 계보와 성향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라도 선비들은 처음부터 .. 더보기
무안공의 조부 나성군(羅城君) 무안공 자강 할아버지의 기사가 신문에 또 실렸다. 이번에는 무안향토문화연구소장 박관서 작가의 전남일보 칼럼을 통해서다. 우연의 일치인지 삼향 하늘에 쌍무지개까지 뜨는 걸 보니 ‘삼향 프로젝트’에 서광이 비친다. 이제 무안공 자강 할아버지의 선대를 소개할 시기가 되었다. 부친 녹사공(나집, 羅諿)은 이미 소개하였으니, 오늘은 무안공의 조부 나성군(羅城君) 나공언(羅公彦, 1346~?)을 소개한다. 나주나씨 직장공파 7세조 나성군의 이름은 공언(公彦)이며 자(字)는 중현(仲賢)이고 호(號)는 저헌(樗軒)이다. 공은 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을 지낸 분파조 원(源)의 손자이며, 공조전서(工曹典書) 겸 양광도(楊廣道) 순무사(巡撫使)를 지낸 자헌대부(資憲大夫) 진(璡)의 아들이시다. 고려말 명현(名賢) 금성인(錦城.. 더보기
주룡에 고하다 http://www.mua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02792 “초대 무안현감 무안공 나자강을 찾아가다.” - 무안신문 [무안신문=김수지 기자] 무안문화원(오해균 원장)이 2021 무안 역사문화자원 발굴 및 교육프로젝트 일환으로 실시하는 10월 답사가 지난 10월30일 일로 주룡마을 일원 및 나주 금호사 등지에서 진 www.muannews.com 위를 클릭하면 기사 전문이 나옵니다. 새벽에 주룡나루, 주룡마을을 거쳐 두 선산을 찾았습니다. 금호공을 비롯한 선조들이 걸었던 발길을 나름대로 예상해 보며 갈룡산에 올랐습니다. 녹사공과 무안공 할아버지께 나주 도선산에 갔던 얘기도 말씀 드렸습니다. 무안공의 이야기가 무안신문에 실리니 기분이 좋네요. 저야 수천 만부를 자.. 더보기
청호리(清湖里)의 전설 오늘도 주룡에서 새벽을 맞이하였습니다. 주룡마을 앞에 있는 갈룡산(渴龍山)은 용이 승천하는 형국으로 원래의 지명은 청호리(靑湖里)였으나 “용은 맑은 호수의 물을 먹어야 한다” 하여 ‘맑은 호수’라는 의미의 청호리(清湖里)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저의 선조 무안공이 잠들어 계신 갈룡산 앞에는 ‘청호지(靑湖池)’라는 저수지가 지금도 있습니다. 야사(野史)에 의하면 용이 먹는 물이 맑아야 하므로 저수지 위쪽에는 사람이 거주하는 것을 금기시하였고, 또 저수지 축조 이전부터 갈룡산에 있었던 절도 옮겼다고 하며, 저수지 상류에서는 농사도 짓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룡마을에서 태어난 나기옥 문중 재무이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최근까지도 주룡마을 주민들은 ‘용이 먹는 물’이라 하여 해당 저수지의 물을 식수로 사용했으며, 이.. 더보기
주룡의 역사 1 - 무안공(務安公) 나자강(羅自康) 주룡의 역사 (1) - 무안공 나자강  “조상의 역사를 잊은 씨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러한 일념으로 나의 뿌리를 찾아 호남의 산천을 구석구석 누비고 있다. 광주에 거주할 때는 나주를 집중적으로 다녔다. 목포에 내려오면서 나는 ‘주룡나루’가 있는 무안군 일로읍에 전력을 쏟고 있다. 아니 이곳이 가까운 연유로 목포에 내려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무안군의 역사는 무안공(務安公) 나자강(羅自康)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를 왜 무안공이라고 할까?그리고 일로 지명의 역사를 소개한다. 무안공은 이조 태종(太宗)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통헌대부(通憲大夫)로 무안현감(務安縣監)과 의주부윤(義州府尹)을 역임하였다. 초대 무안현감과 공석(空席)인 나주목사(羅州牧使)를 권섭(權攝)하며 나주의 서쪽 강변에 집터(家基)를 정하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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