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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은 흐른다

고려 현종과 남해신사(南海神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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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포는 고려-조선시대에는 나주목에 속한 포구였다. 오늘날의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이다..
남해신사 주위의 자란

 

 

 

남해신사 앞

 

남해신사 내부
해신도(海神圖)
남해신사 경내에서 바라본 전시관
경내에서본 남해망루

 

 

주위의 논들은 옛날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영산강의 일부였다.
영암군 고지도
남해신사에서 바라본 영산강 지류

마한문화공원에서 내 관심을 끄는 유적은 남해신사(南海神祠).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에 위치한 남해신사는 남해를 다스리는 해신(海神)에게 국가의 안녕과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남해신사는 강원도 양양의 동해묘’, 황해도 풍천의 서해단과 함께 해신제를 지냈던 3대 사당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사당이다. 남해신사는 백발수신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고려 현종이 보은으로 만들었으며, 해신을 모실 때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죽음을 맞게 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전설이 한 편의 드라마요 대서사시다.

남해신사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증보문헌비고>고려 현종 19(1028)에 이르러 남해의 해신에게 제사의식을 올렸다.”라는 기록이 있다. 남해신사의 수신제는 조선시대 말까지 이어지다가 일제강점기에 중단되면서 명맥이 끊기게 되었다. 이후 발굴조사를 통해 2001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고, 2003년부터는 남해신사 제례 보존위원회가 주관하여 매년 나라의 안녕과 마을 사람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제를 지내고 있다.

<제1화>

고려 현종 원년. 현종의 친송 정책(親宋策)에 불만을 품은 거란족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공격한다. 거란의 대군에 밀려 현종은 나주로 피신하여 현재 영암군 시종면 옥야리로 되어 있는 남해포(南海浦)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날 밤 꿈에 백발의 수신이 나타나 몽탄으로 피신하라고 현몽하여 현종은 즉시 신하들과 함께 몽탄으로 이동하여 목숨을 지키게 된다. 또 군사들을 매복시켜 거란의 장수 하공진을 인질로 잡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군사를 재정비한 현종은 거란군을 무찌르고, 무사히 환궁할 수 있었다.

현종은 꿈에 나타나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백발수신을 위해 남해포에 남해당을 짓고 나주, 영암, 해남, 강진, 영광, 함평 등의 6개 고을 현감들이 한자리에 모여 직접 제를 지내게 했다.

<제2화>

현종의 명을 받은 6개의 고을 현감들이 매년 한자리에 모여 백발수신을 위해 제를 지냈다. 그러던 어느 해, 남해당(남해신사)에서 제를 지낼 때 난데없이 대들보 위에 큰 구렁이가 한 마리가 나타나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를 주관하던 현감이 구렁이를 보고 깜짝 놀라 급사하게 되었다.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하자 6개 고을의 현감들은 서로 제 모시기를 꺼렸다. 그러자 조정에서 3명씩 조를 짜서 정성을 다해 제를 지내도록 명령을 했다. 그러나 현감들은 제사를 지낼 때면 변고가 생길지 몰라 항상 걱정하였다. 특히 처음 당도하는 현감이 제를 주관하다 보니, 먼저 도착하지 않으려고 늦게 출발하였다. 그리하여 남해당에서는 항상 밤이 되어서야 제를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남해신사에 얽힌 두 편의 설화는 남해신사 건립에 대한 정통성과 신성성을 담은 이야기이다. 남해신사 건립은 백발수신의 도움 때문에 목숨을 구한 현종의 보은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수신을 모심에 있어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죽음을 맞게 된다는 설정을 통해 남해신사의 신성함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제3화>

제를 지내기 위해 오는 제관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하마비부터는 걸어가야만 했다. 하마비는 남해신사의 신성함에 대하여 일반적인 지역과 구분을 두어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에게 경건함을 갖도록 하는 경계의 역할을 했다.

수령들이 두려워했던 묘당은 가장 상단에 있었는데 용이 사방에 조각되어 있어 가까이 접근하기를 두려워하였다. 특히 서까래나 용마루는 용각과 용비늘의 단청으로 되어 있어 그 형상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보여서 몹시 두렵게 했다고 전해진다.

필자의 가장 큰 관심을 끄는 이야기가 있다. 남해신은 용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제를 지낼 때면 무안군 일로면 청호리의 주룡량(駐龍梁)에서 용이 나타나 남해포로 들어오는 현상을 볼 수 있다고 구전되고 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밀물 때 영산강을 통해 바닷물이 올라오고 상류에서 흙탕물이 내려와 만나는 형태가 용의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는 영산강 줄기의 전체적인 지형과 어우러져 나타나는 시각적인 모습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나의 작가적 시각은 다르다.

주룡량은 일로 주룡나루이다. 지금 주룡나루를 바라보는 갈룡산에 누워계시는 분이 누구인가? 나주목사를 겸직한 초대 무안현감 무안공 나자강 할아버지다. 고려시대 나주목에 속했던 무안은 세종 5년 무안현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남해신사에 제를 드리기 위해 영산강 밀물을 타고 남해포로 향하는 무안공의 모습을 연극으로 꾸미는 꿈을 꾼다. 무안공 일행이 탄 배는 용의 형상으로 꾸며진 용선(龍船)이다.

제관인 수령들이 두려움 때문에 늦게 도착한 것이 아니라, 영산강의 물때를 맞추다 보니 밤늦게 도착한 것이다. 이건 작가적 상상력이고, 분명한 건 모든 마을 주민이 횃불을 들고나와 수령이 오는 길을 환하게 밝혔다고 한다. 그건 그렇게 설정하여 실경(實景) 역사극으로 꾸민다면 마한문화공원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남해신사의 제향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고려시대에는 동아시아 바닷길의 안녕과 국태민안,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목적이었고,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는 목적이었다. 이제 21세기 새로운 해륙시대에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평화와 새로운 해양시대를 위한 한민족의 미래를 담은 웅대한 축제와 총체극으로 진화되었으면 한다.

영암군과 인접 시군이 마한문화공원과 연계하여 남해신사를 문화관광 명소로 육성해야 한다. 중국의 인상시리즈보다도 역사적이고 웅장한 스토리가 있는 남해신사의 공연콘텐츠에 깊은 관심을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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