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포장수(倉浦將帥) 배상옥을 위한 진혼곡
동학혁명을 이야기할 때 전봉준(全琫準)과 김개남(金開南) 정도만 입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혁명의 중심에는 그들 못지않은 동학의 영웅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무안 동학 대접주 배상옥(裵相玉)이다.
배상옥은 동학혁명의 숨겨진 영웅이다. 갑오년의 항쟁이 끝난 뒤 일제는 배상옥과 관련된 흔적을 철저히 지웠고, 친일파가 득세한 조선은 동학운동에 가담한 인물들을 잔혹하게 처단했다. 그 가족들 역시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고통을 당했다. 동학에 가담했던 사람들은 성(姓)을 바꾸거나 고향을 떠나야 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동학과 관련된 모든 기록은 소각되었다. 일제에 기생하여 살던 사람들은 농민들의 저항과 항쟁을 동학란(東學亂)이라 규정하였다. 탐관오리들의 학정과 폭정을 없애고 외세를 물리치자는 민족운동을 폄훼하며 불순한 난으로 전락시켰다.
세월이 흘러 동학란은 ‘농민운동’으로 불리고 ‘동학혁명’으로 승격되었다. 동학은 우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넘어 자유와 평등, 인권과 정의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고양하고 반제국주의, 민족주의, 근대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2023년 그 기록물들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필자는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을 끝으로 고향에 내려와 블로그를 통해 호남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의 해이다. 이 뜻깊은 해에 내 고향의 외로운 영웅 배상옥을 무대에 올린다.
창포만(倉浦灣)은 조선시대 국창(國倉)이 있었던 포구(浦口)로, 지금은 간척되어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무안 낙지는 알아도 무안 동학은 모른다. 창포만은 망각의 공간이며 상실의 아픔을 상징한다.
우리 민요 ‘파랑새요(謠)’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학설이 있다. 지금까지는 교과서 등에서 녹두밭은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을, 녹두꽃은 전봉준을, 파랑새는 청나라 군대 혹은 푸른색 관복을 입은 관군이나 군모를 썼던 일본군을, 청포장수는 일반 국민 또는 전봉준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왔다.
연극 <창포만에 뜨는 달>은 이러한 기존의 통념을 깨고 ‘청포장수’가 창포만을 배경으로 활약한 무안 동학 대접주인 ‘창포장수(倉浦將帥) 배상옥’이라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연극을 풀어간다.
삼향면 대월리 출신인 창포장수 배상옥은 ‘호남하도거괴(湖南下道巨魁)’라 불릴 정도로 걸출한 농민군의 지도자였다. 그는 영광과 함평, 무안, 장흥, 해남, 강진, 영암지역의 동학교도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전남 서남해 지역의 전투를 주도적으로 이끈 동학혁명의 숨겨진 영웅이다.
장흥에서 관군에게 패배하고 해남에서 붙잡혀 일본군에게 처형당한 배상옥의 시신은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2007년 그가 집강소로 활용했던 청계면 청천리 달성배씨 선조들의 사당 청천사(淸川祠)에 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배우들과 함께 청천사를 방문하여 이 의로운 영웅의 위패 앞에 고개를 숙였다. 연극 <창포만에 뜨는 달>은 창포장수 배상옥과 여전사 꽃님이 그리고 장흥의 대접주 이방언을 비롯한 동학 농민들에게 바치는 진혼곡(鎭魂曲)이다. ‘파랑새요’의 노래 속에서 참형을 당하는 두 영혼을 따듯한 가슴으로 위로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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