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향교나 서원은 사람이 없다. 향교는 한 달에 두 번 말로만 '공자왈' 하시는 분들이 소일 삼아 만나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서원의 문은 꼭꼭 닫혀 있다. 그런데 항주의 만송서원(萬松書院)은 슬픈 이야기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세상의 연인들이 여기에 관광하러 온다. 역사자원을 관광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는 만송서원에 내가 관심을 두는 이유중의 하나다.
만송서원은 원래 남송 보은사(報恩祠)였고 명 홍치(弘治) 11년(1498)에 서원으로 개건하였다고 한다. 명나라 , 청나라 때 항주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역사가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이 가장 큰 서원이 되었다 . 원매 (袁枚), 왕양명 (王陽明) 등 저명 학자들이 여기서 수학했거나 강의를 했다. 지난 2002년 항주시는 기존 유적지에 서원을 재건하고 청소년 유학, 국학 체험, 문화 강좌 등을 개설해 청소년의 국학 지식, 전통 예절 및 인문 소양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서원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 4대 민간전설의 하나인 <양산백과 축영대>의 이야기가 바로 만송서원에서 발생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만송서원을 지금도 생생하게 하는 것은 유명한 학자들의 생동감 있는 동상이다. 오늘은 양산백과 축영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인 <양산백(梁山伯)과 축영대(祝英台)>의 배경은 만송서원과 서호다. 축영대는 귀족 가문의 딸로 남자로 변장하여 서원에 입학하였다. 당시 서원은 여성의 입학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축영대는 만송서원에서 양산백을 만나 3년간 함께 공부하며 우정을 쌓는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의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은 축영대가 떠나게 되면서 양산백은 그때야 축영대가 여자임을 깨닫고는 장래를 약속한다. 하지만 축영대는 부모의 뜻대로 다른 집안에 출가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양산백은 상심해 병으로 죽는다.
혼례길에 연인의 죽음을 알게 된 축영대는 양산백의 무덤을 찾는다. 이때 양산백의 무덤이 갈라지고, 축영대는 무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둘의 영혼은 나비가 되어 결국 사랑을 이룬다. 이들이 만난 곳이 바로 이 만송서원이고, 헤어진 곳이 서호 동남변의 장교(長橋)다. 양산백과 축영대 커플이 차마 헤어지지 못해 서로 배웅하기를 열여덟 번 반복했다는 곳이다.
지금도 중국의 젊은이들이 밸런타인데이에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만송서원이 낭만의 도시 항주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향교와 서원은 신성한 곳으로 유교 혼령만을 위해 존재한다. 위대한 유학자들의 '정신'은 사라지고 허례허식만 남아있다. 경건함 속에 세속의 '추함'을 감추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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