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진에 다녀왔다. 강진만과 만덕호의 풍광도 좋지만, 백련사와 다산초당을 잇는 오솔길을 잊을 수 없다.
다산초당은 자주 찾아가는 곳이다. 그러나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가는 오솔길은 처음이다. 동백나무 숲길로 유명한 백련사도 벼르고 벼르다가 어제서야 다녀왔다.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와 그 길을 걷고 있는가? 어제 걸었던 길과 그 흔적들을 조금만 남긴다.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 정약용은 다산초당에 칩거하는 동안 백련사의 아암(兒巖) 혜장선사(惠藏禪師)와
깊은 교류를 했다. 다산이 유배 온 지 4년 후인 1805년 백련사의 혜장을 찾아 ‘주역’과 ‘역경’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다산은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잇는 1km 남짓의 이 오솔길을 오가며 학문적 교류를 했다.
유가와 도가에 관심이 많고 식견이 있었던 혜장선사와 경학에 밝고 학문적 깊이가 심오한 다산은 열 살의 나이 차와 유가와 불가라는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진솔한 만남을 가졌다.
“나도 늙었구나, 봄이 되었다고 이렇게 적적하고 친구가 그립다니”
다산은 이 오솔길을 걸어 혜장선사를 찾아간다. 두 사람은 수시로 서로를 찾아가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지으며 차를 즐겼다. 궁벽한 바닷가 마을과 적막한 산사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갈증을 풀어주는 존재였다.
혜장은 다산에게 그의 제자들을 소개한다. 그 대표적 인물이 대흥사에 있던 초의선사이다. 그리하여 초의선사는 차를 중심으로 다산과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서울의 명망 있는 학자들과 교류하며 오랜 인연을 갖게 된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상념은 줄곧 혜장, 다산, 초의였다. 강진이 부럽다. 강진군과 백련사가 제자 초의선사를 사랑하는 혜장스님의 마음으로 백련사의 동백나무 아홉 그루만 초의선사 유적지에 기증했으면 좋겠다. 초의선사 유적지는 혜장과 백련사, 대흥사와 초의, 다산초당과 다산 그리고 추사와 연계되어 새롭게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한다.
강진에서 돌아오는 길에 장례식장에 들렀다. 목포 연극을 외롭게 지켜온 김창일 선생이 먼 길을 떠났다.
다산초당 가는 길이 부럽다. 백련사 가는 가는 길이 부럽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찾아가는 길이 부럽다.
혜장이 부럽고 다산이 부럽다. 초의가 그립고 추사가 그립다.
강진만 물길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길을 다시 보고 싶다. 초당 가는 오솔길을 다시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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