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전공인 필자에게 이번 중국 역사문화기행의 가장 큰 볼거리는 가무극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이었다. 송성(宋城)은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성곽과 거리를 재현해 놓은 항주의 대표적인 테마파크이다. 'TIME TRAVEL PARK'라고 내세울 만큼 시간 여행을 떠나는 역사 테마파크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역사 테마파크가 있다. 한때 지자체들이 영화나 드라마의 사극을 촬영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건축물들은 화제를 집중하기도 했지만, 관광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애물단지가 된 지 오래다.
항상 주장하는 바이지만 건축물은 하드웨어다. 어떤 유적지가 관광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인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내 고향의 초의선사 유적지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관람객들의 관심을 끄는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항주의 송성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 테마파크는 거대한 부지와 화려한 건물 속에 다양한 콘텐츠들이 관람객을 유인하고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송성 테마파크의 핵심 콘텐츠는 가무극(歌舞劇)으로 알려진 송성 뮤지컬 공연이다. 한 마디로 송성은 공연형 테마파크로 성공을 거둬 항주 관광의 꽃이 되었다.
송성천고정(宋城千古情)은 송나라의 건국과 금나라의 공격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장군 악비(岳飛)에 관한 전설과 신화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공연물이다. 이 공연 말고도 상해천고정, 계림천고정, 장가계천고정 등 각 지역의 역사를 담은 가무극들이 계속해서 제작, 공연되고 있다.
평생에 한 번은 꼭 보아야 하는 연극으로 포장된 <송성천고정>을 보는 관객은 하루에 수만 명이라고 한다. 필자가 관람한 2월 22일의 저녁 공연도 귀빈석을 제외하고는 수천 석의 객석을 모두 채우고 있었다.
절강성의 성도(成都) 항주는 진나라 때 건립된 중국의 7대 고도 중 하나로 오월국(吳越國)의 수도로 오월 문화의 발원지였다. 항주는 12세기 초부터 1276년 몽골이 침입하기 전까지 남송(南宋)의 수도였고, 북쪽의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가 중국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 문화의 중심지로 영예를 누렸다.
이 가무극은 쇼에 가까운 4막으로 구성된 관광형 공연이다. 연극을 처음 보는 관객도 지루하지 않게 1시간 정도의 공연을 한다. 중국인들의 고난과 역경, 송나라 궁전의 찬란했던 역사, 인도, 서역의 춤, 심지어는 생뚱맞게 아리랑 춤과 농악의 상고 춤사위까지 나온다. 아마도 한국의 관광객들을 위한 억지 배려로 느껴진다.
솔직히 말해 유치한 부분도 많았지만 200여 명의 출연진이 펼치는 화려한 무대가 볼거리로 가득했다. 빛과 영상, 레이저 조명 등 최첨단과학기술을 활용한 환상적인 3D 무대효과와 입체적인 무대가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었다.
부러웠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극장들이 그날 내 눈에만도 7개가 보였다. 1호극장, 2호극장, 3호극장.....
지금도 마음이 편치 않다.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답답하기 때문이다. 공연 한류에 대해서 20년 이상을 떠들어왔다. 한류의 위상과 우리의 뮤지컬 수준을 감안할 때 우리도 훨씬 더 세련되고 감동적인 관광형 공연물을 제작할 수 있다.
문제는 개인이 제작할 수 없다. 지자체가 나서야 한다. 문체부장관이 한국의 시장, 군수님들을 모시고 항주에 가야 한다. 송성에 가면 지자체장들의 의식이 바뀔 것이다. 한 편의 공연물이 지역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줄 것이다.
장관님!
시장, 군수, 도지사님들 모시고 항주에 갑시다!
세 도시만 건져도
한국 공연예술사와 관광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겁니다!
'역사와 문화의 현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당 가는 길, 백련사 가는 길 (0) | 2024.03.11 |
---|---|
항주 만송서원(萬松書院)의 사랑 이야기 (0) | 2024.03.09 |
어느 미술관에서의 단상 (0) | 2024.02.29 |
등왕각(滕王閣) (0) | 2024.02.27 |
중국 '역사문화기행' 들어가며 (0) | 2024.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