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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잠일기(栢蠶日記)

매처구자(梅妻鷗子)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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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구정(梅鷗亭) 가는 길(길 왼쪽 공유지)

 

 

이곳엔 두루미와 토가리(왜가리)도 많아요.

 

 

 

 

 

 

 

 

 

 

 

 

이 사진을 눈여겨 보세요.

 

 


어제 ‘비내리는 날 비둘기와 놀다’를 보시고 공연예술원 카톡에  YT 선생께서 “매자학처  고사가 만들어지겠네요^^ ” 하시며 덕담의 댓글을 달아주셨다. 해박하시고 감수성이 뛰어나신 댓글을 평소에도 자주 올리시는 분이다.

화정(和靖) 선생으로 불리는 중국 송나라 임포(林逋)의 고사성어 ‘매처학자(梅妻鶴子)’를 순간적으로 착각하신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착각하여 ‘매처구자(梅妻鷗子)’로 할 것을 “ㅎㅎ 매자구처입니다.”라는 답글을 보냈다. 카톡에서 한자를 입력하지 못해 서로가 한글로 주고받았던 것이다.

임포는 학문이 깊고 시서(詩書)에 능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는 시인이었다.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20년 동안이나 그곳의 저자에 나가지 않았다. 세상과 관계를 맺지 않고 스스로 격리되어 살았다. 하물며 처자식도 없었다. 

사람들이 그를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불렀다. 매화를 심어 처로 삼고 학을 길러 자식으로 여기며 살았다. 임포는 학을 두 마리 길렀는데, 결코 날아가는 법이 없이 자리를 지켰다. 하늘에 올랐다가도 언제나 내려와 앉는 곳은 그의 집 마당 귀퉁이나 임포 선생이 있는 근처였다. 

임포는 간혹 조각배를 타고 나가 서호 부근에 있는 절을 찾아다녔다. 절에 그려져 있는 불화(彿畵)를 구경하는 것이 시서 다음으로 유일한 취미였다.

손님이 찾아올 때도 있었다. 그가 절에 간 사이에 손님이 찾아오면, 동자(童子)가 손님을 맞이해 놓고 학을 풀어 놓았다. 학들이 어디론가 날아가고 그 얼마 후에 어김없이 임포가 돌아오곤 했다. 학이 하늘로 올라 날갯짓만 해도 집에 누군가가 찾아왔다는 것을 임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매처학자는 속세를 떠나 자연을 벗 삼으며 유유자적하게 사는 선비의 풍류 생활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YT 선생께서는 자연 속에서 비둘기와 노니는 나의 이야기가 언젠가는 전설이 될 것이라는 덕담을 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학(鶴) 대신에 갈매기 ‘구(鷗)’를 사용하여 비둘기가 노는 나의 모습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사실 나는 목포 바다와 함께 유달산과 삼학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 좋은 그곳의 명칭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영산강 하구언 아래 쪽 바닷가’라는 애매하고 긴 표현으로 장소를 설명해 왔다.

이제 찾았다. YT 선생께서 나에게 영감을 주셨던 것이다. 영암군과 농수산자원공사에 제안서를 제출하여 이곳 빈터에 매화나무를 식재하고 정자를 하나 지으면 된다. 이곳이 나불도와 연계되어 언젠가는 목포권 제1의 낙조 전망대가 설치되어야 한다. 그러한 계획으로 이곳에서 조망하는 목포바다와 유달산의 석양과 저녁노을을 줄기차게 소개해 왔던 것이다. 

우리 동네 공원에 널려있는 것이 정자다. 이곳만 해도 300m 거리에 정자가 하나 있다. 그런데 그 정자를 어떤 노숙자가 이불까지 깔아놓고 두 달째 독차지 하고 있다. 아무도 간섭하는 이가 없다.

우선 정자 이름을 먼저 짓자. 매구정(梅鷗亭)! 선비의 상징 매화와 목포 갈매기의 만남이 있는 정자.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그 넓은 빈터의 공유지에는 지금 잡초만 무성하다. 내 머리를 스치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구미시의 강창나루에는 임포 선생의 매처학자(梅妻鶴子)를 사모한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선생이 지은  매학정(梅鶴亭)이 있다. 이제부터 나는 비둘기 사진을 촬영한 일대를 매구정(梅鷗亭)이라 부르겠다. 블로그 방문수 50만 명을 돌파하면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 

오늘 사진 설명부터 매구정으로 합니다! 멋진 이름 아닌가요?  오늘도 멋진 날 되세요!

매구정 9월 14일 석양
매구정 주소와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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