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말고도 요즘 명자꽃이 자주 보입니다. 꽃의 강렬함도 있지만 아마도 이름 때문에 눈여겨보게 되나 봅니다. 목포에서 3곳, 나주에서도 한 번 보았습니다.
명자꽃 하면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김명자(金明子) 선생님.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십니다. 세 가지 기억이 뚜렷하게 납니다.
‘명자’라는 이름이 조금은 촌스러운 이름인데 김명자 선생님은 명자꽃처럼 예뻤던 것으로 제 기억에 각인되어 있습니다. 1학년 때부터 급장을 도맡아 했던 저를 김명자 선생님이 무척 예뻐하셨습니다. 방과 후에 선생님을 비롯한 다른 여성 선생님들과 도시락 점심을 자주 먹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고학년 선배들이 놀려댔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도시락 반찬을 맛있게 먹은 선생님들이 우리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칭찬했고, 그걸 전달하자 한번은 선생님들을 우리 집에 초대하여 대접했던 기억도 납니다. 우리 시골집은 엄청나게 컸습니다. 3채로 되어있는 옛날 시골집은 대지가 650평이 넘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겨울방학을 며칠 앞두고 김명자 선생님이 정문까지 나를 바래다주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날 선생님을 도와 환경정리를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보통 교문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는데 그날은 교문 밖으로 나오자 선생님이 제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더 내려가 삼거리 길이 나오는 큰길까지 제 손을 꼬옥 쥐면서 걸으셨습니다.
“상만아, 선생님 결혼한다. ”
선생님이 제 귀에 대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척 부드러운 말씨였는데, 전 무척 서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나이는 아마도 23~24세쯤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겨울방학이 되어 선생님의 결혼식장에 아버지와 함께 갔습니다. 목포 신혼예식장으로 기억합니다. 선생님은 항상 제 곁에 있었는데, 남의 아내가 된다는 것이 무척 슬펐습니다. 결혼답례 선물로 준 은색 주전자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2학년이 되어 김명자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옮기셨습니다. 그 후 한 번도 뵙지 못하고 반백의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언젠가 초등학교 여학생 동창들이 선생님을 뵈었는데, 제 안부를 물으셨다고 합니다.
선생님도 나이가 들면 늙으실까요? 이제 선생님의 연세도 70대 후반입니다. 아직도 명자꽃처럼 제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김명자 선생님! 옛 시절이 그립고 선생님도 보고 싶습니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김명자 선생님을 찾아뵈어야겠습니다. 함께 나서는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동창회는 선생님들을 모시고 함께하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생존해계신 초중고 시절의 여러 선생님이 많지 않습니다. 세월이 야속합니다.
김명자 선생님! 건강하세요! 꼭 찾아뵙겠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선생님의 손을 꼬옥 쥐겠습니다.
하얀 명자꽃 오후나 저녁에 올리겠습니다.
멋진 토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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