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었다.
임인년에 핀 첫 벚꽃이다. 올해 벚꽃이 피었다는 뉴스는 아직 없다. 인터넷에도 봄꽃 소식은 아직 없다. 카톡에 올해 핀 벚꽃을 올린 분도 아직 없다.
꼭 한 그루에 피었다. 한두 송이 핀 것이 아니라 만개했다. 처음에는 매화인 줄 알았다. 나무를 보니 분명 벚나무였다.
임인년 첫 벚꽃을 본 행운은 아내 덕이다. 아내는 요즘 공예를 배우기 위해 오전 8시 출근해 4시에 돌아온다. 버스를 두 번이나 타고 버스정류장에서 걸어온다. 집까지의 거리가 꽤 되는데 운동 삼아 걸어온다.
버스정류장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시간이 20분이 지나도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지만, 소식이 없다. 전화가 온 것은 그로부터 20분 후였다. 다른 곳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도중이라고 했다.
자전거터미널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고 방향을 바꿔 다시 집 쪽으로 걸었다. 5분쯤 걸어 자전거터미널 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국아델리움 아파트 앞 인도로 걸었다. 주위가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봐도 매화가 아닌 벚꽃이었다.
그런데 또 휴대폰이 말썽이다. 저장공간이 부족하여 촬영 불가능이다. 급한 마음으로 60여 개 사진을 개인톡으로 옮기고 그 사진을 휴지통에 버렸다. 그래도 촬영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휴대폰과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이름 모를 새가 벚나무에 앉아 그림을 만들어준다. 그걸 담아야 하는데 휴대폰은 말썽이고, 아내는 전화해서 어디냐고 되묻는다.
내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속도도 당연히 빨라진다.
“반대 방향으로 오란 말이야! 우리가 자주 다녔던 건널목 근처. 주유소 옆쪽으로!”
“처음부터 정확하게 말해야죠.”
“그래, 그래 빨리 와!”
새는 아직도 날아가지 않고 벚꽃 주위에서 놀았다. 그 순간 아내가 필요한 건 아니다. 아내의 휴대폰이 절실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내가 도착할 때까지 새는 벚나무에 앉아있었다.
오늘 올린 사진 중의 새가 있는 장면은 그렇게 아내의 휴대폰 카메리로 담은 것이다. 몇 년째 사용하는 구식이지만 화질은 좋다. 화면 크기나, 줌(Zoom) 성능이 떨어지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아내의 휴대폰으로 12컷을 담았다. 새가 도망갈까 봐 서두른 면도 있지만, 나무가 서 있는 위치가 길과 언덕 사이의 비탈이라 ‘작품’은 나오지 못했다. 12컷을 담을 때까지 달아나지 않고 자세를 취해 준 새가 고마울 뿐이다.
저녁 준비를 위해 아내가 먼저 집으로 갔다. 다시 차분하게 옛 사진들을 카톡에 옮기고 그 사진들을 휴지통에 버렸다. 그렇게 다시 30여 분을 추위에 떨면서 200여 개의 사진을 휴지통으로 옮기고 저장공간을 확보하였다. 마침내 촬영이 가능해졌다. 외투를 걸치지 않아 저녁이 가까워지자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새벽까지 사진들을 정리하고 카톡 사진들을 컴퓨터에 저장했다. 사진은 촬영이 전반 작업이고, 정리와 선별이 후반 작업이다. 후반 작업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은 그 나름의 사연들이 있는 것이다.
새벽에 다시 나가 몇 컷 더 찍었다. 학창시절 벚꽃 핀 창경원의 밤을 기대했다. 그때 대학생들은 그런 미팅을‘야사꾸라미팅’이라고 했었다. 가로등이 하나 켜있지만, 그때의 아름다움을 담을 수는 없었다. 보름달보다 조금 큰 달이 선명하게 떠 있다. 휴대폰 카메라의 한계를 절감한다.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오늘 일출 장면은 암와대에서 담을 수 있을 것같다. 그리고 개나리가 만발한 4월 15일 암와대에서 보름달을 담아볼 계획이다.
벚꽃이 곧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국 주요 도시의 개화 시기를 안내한 자료를 함께 올립니다. 벚꽃과 함께 멋진 봄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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