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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지고

봄까치꽃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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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까치풀꽃

매거진 "선생님이 알면 좋은 풀꽃곤충새나무'에서, 개불알꽃(구낭화?)

봄까치꽃/ 이해인
까치가 놀러 나온
잔디밭 옆에서

가만히 나를 부르는
봄까치꽃

하도 작아서
눈에 먼저 띄는 꽃

어디 숨어 있었니?
언제 피었니?

반가워서 큰 소리로
내가 말을 건네면
어떻게 대답할까
부끄러워

하늘색 얼굴이
더 얇아지는 꽃

잊었던 네 이름을 찾아
내가 기뻤던 봄

노래처럼 다시 불러보는
너, 봄까치꽃

잊혀져도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며
나도 너처럼
그렇게 살면 좋겠네.


며칠 전부터 수변공원 둑에서 눈여겨보던 꽃이 있다. 아기 손톱만큼이나 작은 이 꽃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진을 찍고서 ‘다음’에서 꽃 이름을 검색해보니 참 민망하다. ‘개불알풀’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그래서 나름 문자를 써서 구낭초(狗囊草)라고 불렀는데, 복잡한 사연과 문제가 있다.

개불알풀은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는 꽃 이름이다. 꽃의 이름은 어떤 특징을 보느냐에 따라 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 사람들은 이 꽃의 열매를 보고 개의 음낭을 먼저 떠올렸고, 서양 사람들은 풀밭에 점점이 박힌 듯 피어 있는 꽃을 보고 ‘새의 눈(Bird's eye)’을 떠올렸다.

개불알풀은 불행했던 시기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다. “한 민족의 글은 시인이 만들고, 한 민족의 말은 연극배우가 만든다”는 괴테의 표현에 공감한다. 시인 이해인은 '봄까치꽃'이란 시로 일제의 잔재와 수녀의 민망함을 동시에 청소하였다. 시인은 아침에 기쁜 소식을 알리는 까치처럼 봄에 일찍 피는 아름답고 고운 꽃에 의미를 담았다.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 내가 본 것과 수녀님이 본 꽃은 ‘개불알풀’이 아니라 ‘큰개불알풀’이다. 개불알풀의 꽃은 분홍색이고, 꽃 크기도 2~3㎜ 정도로 조금 더 작다고 한다. ‘큰’이란 형용사를 접두사처럼 쓰고 있는 큰개불알풀은 유럽에서 자생하던 외래종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온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이 풀이 속한 개불알풀 속(屬) 식물은 전 세계에 걸쳐 무려 460종이 있다고 한다.

꽃 이름은 아름다워야 한다. 같은 이름이라도 시인과 소설가가 쓴 이름이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이해인 수녀가 표현한 ‘봄까치꽃’은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큰봄까치꽃’으로 불러야 한데, 뭔가 이상하다. 꽃이 작은데 ‘큰’이 어울리지 않고 ‘큰봄’도 어색하다. 그래서 나는 결론으로 큰개불알풀을‘봄까치풀꽃’으로 부르려 한다. 풀에 피는 꽃 ‘풀꽃’이 붙으니 큰개불알풀의 상스러움과 왜색을 상쇄시키며 들풀의 생명력과 들꽃의 순박함이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언어란 시인과 소설가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 곱고 아름다워야 할 우리 식물명이 일제가 물러가고도 아직도 남아있다. 이 기회에 문학가와 식물학자들이 참여하는 ‘꽃이름연구회’가 결성되어 아름다운 꽃들이 예쁜 이름으로 재탄생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봄까치풀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이라고 한다. 봄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기쁜 소식이 왔으면 좋겠다. 봄과 까치 그리고 풀꽃의 아름다움이 남녘의 하늘 아래에서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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