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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현장

추모 공연 '몽땅 털어놉시다'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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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장면
중앙(최일훈, 김순이)

 

 

중앙(정종준, 안병경)

 

 

 

 

공연 후, 연출 주호성, 오른쪽 양재성
장경민 제작감독

 

좌 권혁풍, 중앙 윤문식
주 호성 연출의 글
제2회 이근삼연극제 팜프렛 표지
이근삼연극제 작가 소개
이근삼연극제에서의 필자
고 장남수 대표

단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6회 늘푸른연극제'의 참가작 '몽땅 털어놉시다'를 청주 티어터제이소극장에서 보았다. 5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토대로 충북 연극계를 이끌어온 극단 시민극장의 작품이다. 원래 고() 장남수 선배가 연출하려 했던 작품인데 작년 9월 타계하여 대학동기이자 배우 장나라의 아버지인  주호성 선배가 연출을 하고, 아들 장경민이 제작감독을 맡았다. 결국, 그가 만든 극장에서 마지막 추모 공연이 이루어진 셈이다.

장남수 선배와 나의 관계 그리고 타계 소식은 내 블로그에서 소개한 바 있다. 선배가 이끌어왔던 극단 시민극장은 제5회 전국소인극 경연대회에서 옹고집전’(김상렬 작/장남수 연출)으로 최우수단체상(문화공보부 장관상) 수상, 81년 전국연극경연대회에서 날개’(정하연 각색/장남수 연출)로 최우수단체상(대통령상) 등을 수상해 연극계의 인정을 받으며 꾸준히 관객들과 만남을 이어오고 있는 단체다.

연극 '몽땅 털어놉시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원로 연극인 윤문식을 비롯해 양재성, 안병경, 최일훈, 김순이, 정종준, 권혁풍 등 7명의 원로 연극인들과 젊은 배우들이 무대에 올랐다. 권혁풍을 제외한 6명의 배우들은 장남수의 대학 선배, 친구, 후배들이고, 물론 나와도 동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돈벌이가 되지 않는 이번 추모 공연에 참여한 의리의 연극인들인 것이다.

몽땅 털어놉시다의 작가는 이근삼 선생이다.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초기 교수를 역임했던 이근삼 선생은 나중 서강대 영문과로 학교를 옮겨 나는 직접 배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선배들이 존경했던 교수로 잘 알려져 있다. 나도 병상에 누워계셨던 선생님을 병문안 가기도 했고, ‘이근삼연극제를 개최하여 선생의 작품 4개를 총괄 제작한 인연이 있다.

연극 몽땅 털어놉시다’는 진실이 은폐되고 자본이 절대 가치가 되는 1960년대의 사회상을 풍자하는 희극이다. 아들 봉구와 아버지 영팔이 함께 떠난 여행에서 마주한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들의 군상과 진실을 펼쳐낸다. 50년이 지난 작품이라 각색을 했는데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긴장감 있는 추리극 스타일의 극적 몰입과 국가 폭력과 위선의 역학관계가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번 청주공연에서 모두 15명의 배우가 출연했다. 그런데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가 또 있었다. 장남수 선배였다. 물론 무대장치로 설정한 별장의 주인 사진이었지만, 연출의 의도대로 살아있는 폭력의 현장을 묵도하는 역할을 톡톡하게 해내고 있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이 사진은 대학 동기인 배우 안병경 선배가 직접 그린 초상화라고 한다.

극단을 만들고 50년간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역할만 잘 소화하면 된다. 그러나 연출은 작품을 최종적으로 책임지고 극단 대표는 제작비를 마련해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 그런데 장 선배는 소극장을 운영해 왔으며 몇 년 전부터는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까지 마련하였는데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 그러한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우리 곁을 떠나게 된 것이다.

장 선배는 나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내 작품 <멍키열전>을 중국 배우들을 기용하여 장기공연할 계획이었으며, 친구인 배우 서인석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도 준비하고 있었다.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었던 장미전쟁을 연극화한 로즈가의 전쟁을 내가 희곡을 구해 미국에 있는 내 아들이 번역까지 마친 상태였다.

물론 극단과 소극장은 장 선배의 아들 장경민 연출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꾸려가고 있다. 연극을 전공한 아들은 대학의 겸임교수를 역임한 재원이다. 나와도 신뢰를 쌓고 있어 언젠가는 한 작품 정도는 극단 시민극장과 내 극단 5스튜디오의 합동공연으로 작품이 오르리라 기대하고 있다.

연극이 끝나고 배우들과 함께 홍어 파티를 했다. 내가 코로나 재난지원금으로 받은 카드로 목포에서 사서 가지고 간 것이다. 윤문식 선배의 입담으로 파티는 무르익었다. 그러나 청주에서 하룻밤 묵고 갈 것이란 내 예상과는 달리 배우들이 모두 서울로 올라가는 바람에 그날 새벽 나도 목포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 선배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

나 교수! 방 잡아 놨어! 한 잔 혀! 홍어 남은 거 싸 가지고 숙소에 가는겨!”

장남수 선배의 묘소는 다음 기회에 가야 할 상황이다. 문 잠긴 단재기념관도 다시 방문하면서.

연극은 인간 영혼의 생활을 무대에서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몽땅 털어놉시다는 무대 밖에서도 인간의 훈훈한 정이 물씬거리는 연극이었다. 오늘도 가난한 연극무대를 지키는 이 땅의 연극인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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