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한 감독의 책에 실을 ‘감수의 글’을 쓰고 있다. 제목이 ‘이 땅의 진정한 연기자를 위해서’라는 제목이다. 3분의 2를 썼는데 밤을 꼬박 새웠다.
29일까지 써야 한다. 아직 여유는 있지만, 심리적 압박이 심해 마음 놓고 멀리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운림산방의 새벽 운치도 느끼고 싶다. 대를 이어 한국 남종화의 맥을 이어온 소치의 손자 허건 선생의 남농기념관도 찾아가야 한다.
최근 10여 일 동안 영산강 민물가마우지의 사진을 수백 컷 담았다. 사진이 맘에 들어 이걸 활용해서 별도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 잠시 연기(演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배우예술을 행동의 예술이라고 한다. 연기자가 무대에서 펼치는 모든 행위는 행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대에서의 이 행동을 스타니스랍스키는 편의상 내면적인 행동과 외면적인 행동으로 구분한다. 움직이는 것만이 행동이 아니다.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은 외면적 행동이다. 그러나 움직이지 않아도, 말을 하지 않아도 생각하고 듣고 느끼는 것도 행동이다. 이것이 내면적 행동이다. 이 행동들은 지성과 의지, 정서의 영역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대에서의 모든 행동은 특별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문을 연다면 문을 여는 이유가 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서, 환기를 시키기 위해서, 또는 누군가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대에서의 모든 행동은 내면적 동기에 의해 그 상황에 맞는 외면적 행동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이것이 스타니스랍스키 시스템의 핵심이며, 이것을 ‘신체적 행동법’이라고 부른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주먹구구식으로 연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전공한 연기교육은 체계적인 교육과정으로 혹독한 훈련을 거쳐 연기자를 만들어낸다. 우리의 교육과정 중에 ‘관찰’이라는 수업이 있다. 본격적인 역할 창조로 들어가기 전의 훈련으로 3가지의 종류가 있다.
인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에 대한 관찰이다. 아주 특이한 사람들의 동작과 태도, 표정, 목소리를 관찰하고 연구하여 표현하는 훈련이다. 걸음걸이, 손짓, 버릇 등 단순한 외형만이 아니라, 나중에는 심리적인 상태까지도 담아야 한다.
두 번째는 동물에 대한 관찰이다. 비교적 쉬운 원숭이, 호랑이, 새, 닭 등의 동태를 정확하게 포착하여 그 동물의 특징을 담아내는 작업이다. 물론 최종에는 그 동물의 생각이나 정서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물에 대한 관찰이 있다. 생명체가 아닌 주위의 모든 대상을 소재로 삼는다. 그 사물을 의인화하여 외적 특성과 내면적 사고, 정서, 의지 등을 표현하는 훈련이다.
민물가마우지를 동물에 대한 관찰의 대상으로 삼고 나름 연구를 했다. 가마우지를 의인화하여 소설을 쓰고 사진을 함께 실린다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진은 대단히 단순하다. 마치 스케치나 크로키 같다. 그러나 디테일한 동작에는 심리적인 요인들이 숨어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도 사람이나 어떤 대상에 연구가 필요하다. 고도의 주의집중을 통해 세밀한 관찰의 훈련이 필요하다. 인간의 동태에 대한 자연의 변화에 대한 현미경적 관찰이 필요하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 동작만으로도, 눈빛만으로도, 목소리만으로도 인간의 섬세한 심리와 정서를 읽어내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관찰 수업은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삶 자체에서, 만남 자체에서 그 인물에 대한 의식적인 주의집중이 필요하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연기학(演技學)은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걸 인간학이라고 부른다.
세상에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행동이나 목소리를 세밀하게 관찰하면 진의(眞疑)을 알 수 있다. 행동은 내면의 외적 표현이니까.
요즘 민물가마우지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영산강 민물가마우지 사진 10개를 올립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홀로 앉아 있는 이 가마우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가마우지의 생각을 의인화(擬人化)해 보세요. 상상력을 동원해 스토리텔링까지 하시면 금상첨화입니다.
코로나 비상입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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