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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현장

운림산방(雲林山房)과 소치(小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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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학기 강의계획서 작성을 마쳤다. 한 학기 원생들과 함께 공부할 과목은 ‘연극제작연구’다. 원생들과 함께 연극제작에 관한 공부를 하며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운림산방(雲林山房).

 

이름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산방 풍광 자체가 그대로 예술이다. 한 폭의 그림 같다.

 

이런 운치는 계절에 따라 다르다. 앞으로 열 번은 더 가야 한다.풍광의 주인공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도 최소한 4번은 다루어야 한다. 어쩌면 더 언급해야 할지도 모른다.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  글씨, 그림, 시에 타고난 재주를 타고난 소치는 초의선사를 스승으로 만나 서화(書畫)에 눈을 떴고, 추사 김정희를 만나 시와 글씨를 다듬어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능한 삼절을 이루었다.

 

남종화의 산실인 운림산방은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에 있다. 진도는 옛날엔 섬이었는데 지금은 목포에서 1시간 거리다. 남쪽에서는 비교적 높은 485m의 첨찰산(尖察山)이 산방을 품에 안고 있다.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가 기거했던 곳이다.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난 허련은 20대 후반에 해남의 대둔사 일지암에서 초의선사의 지도를 받으며 공재 윤두서(尹斗緖)의 화첩을 보고 그림을 공부했다. 1840년 33세 되던 해 선사의 소개로 추사 김정희를 만나게 되어 본격적으로 시서화에 대한 수업을 받았다.

 

소치는 허유(許維)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는데, 이는 당나라 남종화의 효시로 알려진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당대의 최고의 명사였던 흥선대원군 이하응, 민영익, 신관호, 권돈인 등 권문세가들과 교유한 그는 명성이 높았다. 소치를 일컬어 민영익은 ‘묵신(墨神)’이라 표현했고, 정문조는 삼절(三絶)이라고 평했다.

 

 소치는 스승 김정희가 죽은 다음 해인 1856년에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초가를 지었다. 평생의 은인이자 첫 스승인 초의선사가 일지암을 초가로 이었는데 기와집은 엄두로 못 낼 일이다.

 

 처음에는 운림각(雲林閣)이라 이름 짓고 마당에 연못을 파서 주변에 여러 가지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만들었다. 이 또한 스승의 예술 감각을 일게 모르게 이어받은 것이다,

 

소치는 이곳에서 만년을 보내면서 그림을 그리며 글을 썼다. 1893년 8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곳에서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다. 소치가 죽은 후, 아들 미산(米山) 허형(許灐)이 진도를 떠나면서 운림산방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게 된다. 그러나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쓰러져가는 이곳을 허형의 아들 허윤대가 다시 사들였고, 또 다른 아들 남농(南農) 허건(許楗)이 1982년부터 옛 모습으로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운림산방의 앞마당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외곽은 네모나고 그 안에 동근 섬이 있어 외방내원(外方內圓)의 형상이라고도 한다. 연못 한가운데 위치한 섬의 배롱나무는 소치가 심은 것이다.

 

운림산방이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은 소치가 살았기 때문이 아니고, 남종화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남종화는 당나라의 시인이자 화가였던 왕유를 비조로 하여 송, 원, 명의 문인화가(文人畵家)들에 의해 전해 내려온 화법으로 북종화와 구별된다.

 

북종화와 남종화의 차이점은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있다. 북종화는 외형을 위주로 한 사실적인 묘사에 중점을 두고, 남종화는 작가의 내적 심경에 중점을 둔다.

 

소치 허련은 사의성(寫意性)에 중점을 둔 남종화에 심취했다. ‘소치’라는 아호는 스승인 김정희가 내려주었는데 원나라 때 사대가의 한 사람이었던 대치(大痴) 황공망(黃公望)을 본떠 지은 것이라고 한다.

 

옛 선비들은 학문을 이르는 문사철(文史哲)과 문예를 통칭한 시서화(詩書畵)를 소양으로 모두 갖추어야만 지식인으로 인정받았다. 소치는 시서화로 당대를 휘어잡은 대가였는데, 특히 묵죽(墨竹)을 잘 그렸고 김정희의 글씨를 따라 흔히 추사체를 썼다고 한다.

 

   “압록강 동쪽에서는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

 

추사의 제자 사랑이 참으로 대단하다.좋은 스승이 좋은 제자를 만드는 것이다.

 

꽃 피는 3월, 원생들과 운림산방 마루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초의, 추사, 소치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스승 정약용 이야기도.

 

또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 전설의 연극인 스타니스랍스키와 그 제자 박흐탄코프. 에브게니 박흐탄코프는 스승 스타니스랍스키보다 먼저 죽은 러시아의 천재적인 연출가이자 연극 교육자이다.

 

그리고 7월엔 서울 제자들도 부르고 싶다. 배롱나무 꽃이 피는 계절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소허암(소치가 기거했던 곳)
소허암 내부
운림산방
소치 허련
초의선사
추사 김정희

알림:

운림산방과 소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운림산방에서 바라본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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