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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현장

임인년 둘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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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향교

 

 

전교실에서

 

 

수령 640년 이상의 은행나무

 

하마비

 

 

 

나주향교

 

외삼문

 

 

명륜당

 

 

 

동재(서재?)

 

충효관

 

 

 

나주향교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각종 비석들

 

 

 

 

대성전
코로나로 외부만 촬영

임인년 둘째 날

 

오후 2시 일로인의예술회의 새해 기획 회의에 자문 역으로 참여했습니다. 시골의 이 예술단체에서 그 유명한 향토연극 <품바>가 태동합니다. 40년 전의 일입니다.

 

고향에 내려올 때는 그 정도의 계산은 하고 내려왔습니다. 재능기부 말입니다. 예술세계는 다르지만,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지키고 가꾸겠다는 젊은 열기에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오후 4시에는 무안향교에서 신년하례회가 있었습니다. 새해부터 무안향교의 장의(掌議)’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장의는 조선 시대 성균관, 향교의 재임 가운데 으뜸 자리를 이르던 말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재단의 이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향교와 서원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어느 지역을 방문하듯 그 지역에 있는 향교와 서원을 방문해 왔습니다. 물론 향교나 서원이 없는 도시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도시가 목포입니다.

 

왜 목포에 향교와 서원이 없을까요?

 

쉽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조선 시대 서울에 있는 국립대학이 성균관(成均館)입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 있는 국립학교가 향교입니다. 서원은 사립학교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목포는 역사가 짧은 도시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개항된 목포는 무안현의 목포진에 속한 작은 항구였습니다. 따라서 고려, 조선의 교육기관인 향교가 있을 수 없지요.

 

무안 최고의 문화유적은 무안향교입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1398년 전국에 향교를 짓게 합니다. 무안향교는 이보다 앞서 1394(태조 3)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성의 남쪽에 있는 공수산(控壽山) 언덕에 설립하였는데 호랑이의 침해가 심하여 1470(성종 1) 현재의 위치로 건물을 옮겼다고 합니다.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것을 1689(숙종 15) 대대적으로 중수하여 복원하였고, 그 후 수차례의 보수와 복원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향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합니다.

 

무안향교는 무안 최고의 문화유적답게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전국 유림백일장에서 은상 수상한 백용수 전교와 원로 장의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제가 왜 무안향교의 장의가 되었을까요?

향교의 교육적 기능을 부활해야 합니다.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방치해서는 곤란합니다. 향교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저는 젊은 세대의 인성교육에 주목해 왔습니다. 미국에서 미주 한국일보와 함께 청소년 감성교육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미래세대의 주역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올바른 가치관과 타인을 배려하는 심성을 배양하고 올바른 인성과 예절 교육을 통해 유구한 역사를 걸어온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을 확립해야 합니다.

 

향교와 서원의 전통적인 가치와 지역의 문화를 배우며,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성교육이 필요합니다. 나주의 금호사, 무안향교, 주룡마을, 유교리 고택을 연결하여 역사문화 로드를 만들고자 합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저를 무안향교의 장의로 추천하신 창수 아재는 제가 꿈꾸는 생각들을 파악하셨나 봅니다. 저는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무안공 할아버지의 신기(神氣)가 거기까지 뻗쳤나 봅니다.

 

저녁에 창수 아재로부터 카톡이 왔습니다.

 

  섣달 초하루

 

  어젯밤 朔望(삭망) 準備

  鄕校에서 鄕人 對面

  前現 전교님 儒道會長님 모시고 壬寅년 새 出發

 

  젊은 장의단이 參與하시어

  務安鄕校는 오랜만에

  새로운 雰圍氣一新

  轉換되리라 豫想해본다.

  孔記2572.12.1.

 

첫날이라 무안향교의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습니다.

대신 나주향교의 사진을 올립니다.

 

나주향교는 태조 7(1398)에 지었으며, 특히 보물 제394호인 대성전은 그 규모가 대단히 웅장할 뿐 아니라 양식, 격식이 뛰어나 조선 향교건축을 대표합니다. 규모 면에서 한국 최대의 향교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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