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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현장

이순신과 고하도(高下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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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

 

모충각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비

 

 

 

 

유달산

 

 

 

 

 

고하도 새벽
고하도 일출 미리보기

어제(22)는 음력 1119일로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순국한 날이다. 장군의 탄신행사는 여러 지자체에서 떠들썩하게 치르지만, 정작 순국일은 그냥 지나치고 있다.

 

어제 카톡에서 동짓날 문자는 불이 나게 올라왔다. 하지만 장군의 순국에 관한 소식은 단 하나.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의식 있는 역사학자 윤명철 교수께서 장군의 순국하신 날을 상기시키며 시 한 편을 보내주셨다.

 

 

    칼날이 번쩍거린다.

              윤명철

 

  새 아침 햇덩이

  밤새껏 힘겹게 불 지피면서

  실개천 갈대밭에 끼인 살얼음처럼

  반 넘어 녹아버린

  달덩이 대신

  비장한 각오로 솟구쳐

  새하양 빛물들 쏟아

  잿물 번진 하늘 말갛게 씻기고.

  깜장 산 위에,

  흰 서릿발들 파도로 솟구친

  빈 들판에

  빛결들 눈보라처럼 휘날린다.

  그날

  노량에서

  매운 연기 찬 하늘 올려보곤

  핏물 출렁이는 짠 물결 틈에

  한 몸 던지셨던

  그이의 그 칼날처럼.

 

  난

  이 어두운 날들

  서걱서걱 베버려

  맑디맑은 세상

  찰나라도 만들까 해서.

  그이가 순국하신

  이날

  새벽 들판을 뛰며

  삼척 칼 대신

  빛 창날 끌어안고

  一揮掃蕩(일휘소탕)의 꿈 꾼다.

 

  바보처럼.

 

새벽부터 휴대폰과 씨름했다.

잘 찍어둔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관련 사진이 갤러리에서 보이지 않았다. 아내 휴대폰은 쓸만한 사진이 별로 없다. 구글 포토에서 겨우 찾았는데 이번엔 전송이 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휴대폰 기능을 10%도 모른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 보다 못한 아내가 고하도에 다시 가서 새로 찍자고 했다. 고집을 부려 5시간 만에 성공했다.

 

고하도는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고하도에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가 있다. 목포에 오는 관광객들은 꼭 케이블카를 탄다. 유달산과 고하도를 연결하는 케이블카는 인산인해다.

 

고하도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유적지까지는 불과 2Km 남짓 거리다. 그런데도 유적지를 찾는 사람은 없다. 관광객 탓을 할 것이 아니라 지자체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高下島李忠武公遺蹟)은 이순신 장군이 1597(선조 30)에서 1598년까지 108일간 머물면서 전쟁에 대비하며 군진(軍陣)을 재정비했던 곳으로,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 고하도에 위치한다. 1974924일에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목포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 뒤에 군산 앞바다의 고군산도(古群山島)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15971029일에 이곳 고하도로 진을 옮겼다. 고하도는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조그만 섬이다.

 

고하도는 조선 시대에는 나주목(羅州牧)에 속했으며, 비문에는 고화도(高和島),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보화도(寶花島)라고 표기되었다. 서남해안의 바닷길과 영산강의 내륙 수로가 연결되는 지점으로 지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이곳에서 장군은 수군 재건에 필수적인 전선 건조와 군량 모집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위치가 서해 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남해에서의 해상 활동에 적절하지 못하고, 섬이 작아 곡물 생산이 적고, 유입된 백성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여 1598217일 완도(莞島) 동북 쪽에 위치한 고금도로 통제영을 옮겼다.

 

고금도로 옮겨간 이후 별장(別將)이 배치되었다가 1647(인조 25) 고하도진마저 당곶(唐串, 현재 전라남도 목포시 하당 일대)으로 옮겨 감에 따라 폐진되었다. 선착장에서 약 200m 떨어진 당산에 1722(경종 2)에 세운 유허비가 있다.

 

고하도에서는 유달산과 목포의 북항이 보인다. 고하도는 유달산 밑에 있는 섬이라 하여 고하도(高下島)라고 불리게 되었다.

고하도는 삼국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원래 무안군에 속해 있으면서 섬이었지만, 지금은 목포대교가 연결되어 서해고속도로에서 허사도까지 고하도를 지나가게 된다.

 

고하도 이충무공 유적비(高下島 李忠武公 遺跡碑)는 정유재란 )때 충무공이 고하도를 전략기지로 삼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다. 이 비는 일제 강점기에 야산에 버려져 있던 것을 광복이 되면서 현 위치에 세워졌으며, 비각은 1949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사진과 인터넷을 참고하기 바란다.

 

  내가 태어난 날 기억하지 말고

  내가 죽은 날을 기억해라.

 

충무공이 후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 같다.

케이블카만 타고 다시 목포로 가는 관광객의 심정을 이해한다.

 

고하도에 관광객이 머무르지 않는다.

고하도에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케이블카 탑승객의 10분의 1만이라도 유치할 수 있는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 이순신이 답이다. 이순신콘텐츠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해남과 진도를 연결하는 이순신 명량호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해남군, 목포시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여수도 동참하면 금상첨화다! 관광은 벨트화가 중요하다.

 

   유적지에서 담은, 인상 깊은 고하도의 일출 사진 계속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뜻깊은 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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