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8일은 이순신 장군의 탄신 476주년이었다.
충무공의 탄신제가 있었던 다음날 장군의 발자취를 따라 해남과 진도를 찾아갔다.
해남에는 전라우수영이 있고, 진도에는 벽파진이 있다. 그 사이를 흐르는 물길이 울돌목이다. 지금은 진도대교가 연결되어 해남과 진도는 한 몸이 되었다.
울돌목(명량해협)은 수심이 얕아서 배가 항해할 수 있는 범위는 좁고, 그중에서도 밀물 때 넓은 남해의 바닷물이 좁은 울돌목으로 한꺼번에 밀려와서 서해로 빠져나가면서 해안의 양쪽 바닷가와 급경사를 이뤄 물이 쏟아지듯 빠른 조류가 흘렀다. 울돌목 물살의 또 다른 특징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암초가 솟아 있다는 점이다. 급하게 흐르던 물살이 암초에 부딪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소용돌이치게 되는 것이다.
1597년 9월 16일 전남 울돌목. 일본의 정예함선 133척이 바다를 덮었다. 예비 함대 70척도 뒤를 따랐다. 조선 수군의 세력은 불과 13척.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싸움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싸움의 결과는 100척 이상의 일본 배를 침몰시킨 조선의 압승. 한산대첩과 더불어 사상 최고의 해전으로 꼽히는 명량대첩의 개요다.
명량해전은 정유재란의 흐름을 뒤바꾸었다. 10만 명의 병력이 배를 타고 서해를 북상해 한양을 공격하겠다는 일본의 수륙병진 전략이 수포로 끝났다. 한양을 200여 리 앞둔 직산과 보은까지 올라왔던 일본군이 남쪽으로 총 퇴각한 것은 명량해전의 패전에 따른 것이다.
조선 수군의 승전 요인은 명장 이순신의 존재에 있다. 그는 빠르고 급변하는 울돌목의 해류를 이용할 줄 아는 지략을 갖고 있었다. 그는 민초들의 도움 없이 울돌목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이순신 장군에게 물길의 흐름을 가르쳐 주고 물때의 법칙을 가르쳐 준 이들이 해남과 진도, 그리고 인근 지역 갯마을 사람들이다.
이순신은 강강술래의 연출가였다.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인 강강술래는 주로 해남·완도·무안·진도 등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되어왔다. 노래와 무용이 혼합된 부녀자들의 놀이로 주로 추석날 밤에 행하여지며 정월 대보름날 밤에 하기도 한다.
강강술래는 한자로 ‘强羌水越來(강강수월래)’로 표기한다.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해석에서 보듯 이순신 장군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순신이 해남 우수영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적군에 비하여 아군의 수가 매우 적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자 차림을 하게 하고, 옥매산(玉埋山) 허리를 빙빙 돌도록 했다.
바다에서 옥매산의 진영을 바라본 왜병은 이순신의 군사가 한없이 계속해서 행군하는 것으로 알고, 겁을 먹었다고 한다. 이후 근처의 마을 부녀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빙빙 돌면서 춤을 추던 관행이 강강술래로 정착되었다.
달이 가장 밝은 추석날이나 정월 대보름날이면 고대인들은 축제를 벌여 춤과 노래를 즐겼고, 이것이 정형화되어 강강술래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전승된 강강술래를 이순신이 의병술(擬兵術)로 채택하여 승리를 거둠으로써 널리 보급되고 더욱 큰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순신은 위대한 전략가이자 위대한 연출가였던 것이다.
며칠 전
윤명철 교수께서 개인톡으로 소논문 하나를 보내 주셨다.
여기에 에필로그를 소개한다.
아, 문자의 시대는 점점 물러가고 이제 몸짓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문자보다 더 강력한 권력과 돈과 기술력을 무기로 인간의 역사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인정하건 안 하건 영화는 이제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문자만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은 알 수 없고, 이해가 불가능한 바다 삶의 실상과 느낌을 전달해 주는 매체는 영화이다.
1998년 어느 날.
영화 <명량>이 개봉되기 16여 전에 쓰신 글이다. 윤 교수의 예언처럼 영화 명랑은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하며 한국의 영화사를 다시 썼다.
진도대교의 개통으로 주위의 포구와 항구가 기능을 잃고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다. 영화는 언제 어디서나 다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영화 ‘명량’을 관람하고 주위 바다를 순회하는 크루즈‘명량호’출항을 제안한다.
개인적 욕심으로 참여극(參與劇) <강강술래>를 만들고 싶다. 공연예술의 생명은 현장성에 있다. 해남이나 진도 어디에서도 좋다. 이 연극을 보기 위해, 이 연극에 참여하기 위해 전 세계의 관객들이 목포를 거쳐 해남, 진도를 찾을 것이다.
일회성 축제를 벗어나 날마다 축제가 있는 해남과 진도, 날마다 공연이 있는 남도, 날마다 영화가 상영되는 크루즈 ‘명량호’의 출항을 기대해 본다.
명량대첩 당시 어란진(於蘭津)에서 올라오는 왜선을 감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망해루와 관련 사진을 계속 올릴 에정이다. 남쪽 바다에는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가 많다. 적당한 기회에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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