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며 내년을 설계해 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일을 하셨으며, 어떠한 일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셨나요? 큰 보람은 없더라도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작은 의미라도 찾으면서 살아오셨다면 알찬 한해였다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결단의 시기를 맞곤 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어디에서 할 것인가?
결정이 내려지면 이사를 하게 됩니다.
저도 지금까지 30번 이상은 이사를 했습니다.
무안, 목포, 무안, 광주, 목포, 서울, 광주, 전주, 부산, 서울, 모스크바, 서울, 로스엔젤레스, 서울, 광주 그리고 목포.
일 년 이상씩 살았던 지역만 해도 꽤 됩니다. 그러나 한 지역에서의 이사, 그리고 몇 개월씩 체류했던 도시를 합치면 40번 이상의 짐 쌓기를 했을 것입니다.
저에게 올해의 가장 큰 사건은 목포에 내려왔던 일입니다.
고향 무안 삼향으로 가느냐, 선조들의 본향 나주로 가느냐, 고민하다가 목포를 택했지요.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영산강의 끝자락에 있으며 목포 바다와 영산강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었죠.
영산강.
저는 처음부터 영산강을 의식하고 목포에 왔습니다.
영산강에는 역사가 흐르고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가 흐르고 있으며, 선조들의 역사가 숨어 있지요.
영산강은 역사의 강이자 문화의 강입니다.
저는 강에 숨은 역사와 문화를 끄집어내고, 그걸 콘텐츠와 예술이라는 형식으로 만들기 위해 목포에 왔던 것입니다.
2021년은 철저한 계획 속에서 그 기초공사를 했던 한해였습니다.
나주와 일로, 삼향, 목포는 저의 소중한 역사 공간이자, 창조 공간입니다. 물론 영산강을 끼고 있는 몽탄과 영암 그리고 함평도 빠트릴 수 없는 공간이지요. 또 영산강의 강물을 받아내는 해남과 신안군의 해륙(海陸)도 소중한 영역입니다.
‘영산강 문화권’
윤명철 교수님께서 저에게 빨리 선언하라고 하십니다. 영산강 문화권의 새로운 시대가 열려야 합니다.
영산강 문화권에서 빠트릴 수 없는 씨족이 있습니다. 저의 선조들은 영산강을 주 무대로 삼아 활동해 왔습니다. 물론 중앙무대와 벼슬 활동을 했던 지역에서도 살아왔지만, 곧은 말 하다가 수 틀리면 낙향하여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며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나주를 세거지로 삼았던 우리 선조들의 역사가 일부 무안으로 이동하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분은 무안공 나자강 할아버지입니다. 그분이 무안 현감을 하지 않았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무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어쩌면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제가 보내는 사진들을 보지 못하고 사셨을 겁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가정이고요, 무안공의 존재는 영산강 문화권의 역사에서 매우 소중한 인물입니다.
2021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갈룡산의 설경’을 공개합니다. 갈룡산의 설경은 산소도 예술입니다.
세장산에 오르며 무안공의 산안(山眼)에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무안공의 아버지 녹사공의 산소에서 바라보는 망모산의 풍광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후손들이 심은 소나무도 눈(雪)과 함께 한몫합니다.
첫눈과 함께 갈룡산에 오른 추억을 잊지 못합니다. 갓바위 설경을 촬영하던 다음 날 오후입니다.
올해 저에게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목포에 내려와 선조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를 재단장하여 여러분에게 영산강 문화권의 이야기와 사진을 소개했던 일입니다.
무안공의 이야기는 단지 서막에 불과합니다.
새해에 무안공 후손들을 중심으로 호남 선비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남은 해 멋지게 장식하세요!
멋진 꿈 설계하세요!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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