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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잠일기(栢蠶日記)

친구와 자작나무 그리고 솔제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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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골로빈의 <밤의 자작나무> (1908-1910)
알렉산드르 이사에비치 솔제니친(1918-2008)

 

솔제니친의 저서; <암병동> 러시아판 표지

 

자작나무와 차가버섯
차가버섯 추출액 베푼긴
(사)음악연대 팜프렛

 

(사)음악연대 창립공연 프로그램과 출연진
12월 7일 목포바다 태양

 

   

친구 승희를 생각하다가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암 투병중인 승희가 암 환자를 위한 공연단체 ()음악연대의 창립공연을 한다고 합니다.

 

승희는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광주에 있을 때, 친구의 투병 소식을 알게 되었고, 그때 나는 내가 간직하고 있었던 베푼긴이란 약을 한 병 들고 전남대 화순병원을 찾아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베푼킨은 자작나무에 기생하는 차가버섯에서 추출한 농축액입니다.

자작나무는 북한의 산악지방이나 만주, 시베리아 등 추운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입니다. 우리의 소나무처럼 날씨가 추운 러시아에서는 자작나무가 상징처럼 되어 있지요.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 차가버섯은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알락산드로 솔제니친의 소설 <암병동(Раковый КорпусCancer Ward)>이 소개되면서 그 인기가 높아졌고, 솔제니친이 1970년 노벨 문학상을 타게 되자 서방세계에서도 암치료나 예방에 좋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생활할 때는 차가버섯의 액기스를 추출한 베푼긴의 존재를 잘 몰랐습니다. 해외 레시던스 작가로 선정되어 사할린에 체류하면서 베푼긴의 효능을 알게 되었고, 사할린의 약국을 죄다 돌면서 베푼긴을 구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후 블라디보스톡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약국에 베푼킨 파동이 일어났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주위에 어찌나 암 환자가 많은지 제가 가지고 있던 베푼킨도 바닥이 나고 말았습니다. 승희는 그 마지막 수혜자인 셈입니다.

 

승희는 베푼긴의 선물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래서 광주에 있을 때부터 친구 용석이와 함께 자주 만났고, 깊은 얘기를 허물없이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승희가 인감증명과 인감도장을 요구했습니다. 그때는 아내가 미국에 있을 때였습니다. 아내에게 약속했던 일이 있습니다. 더 이상 주위 사람들에게 인감도장을 찍는 일은 하지 말자고. 사실 많은 사고가 있었지요. 선배, 후배, 제자까지도요. 그분들은 이제 연락도 오지 않지요.

 

아내와 함께 행정복지센터에 갔습니다. 요즘은 인감도장 없이도 인감증명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습니다. 승희는 병원에서 투병을 하면서도 암 환자를 대상으로 자선 음악공연, 악기 재능교육, 취미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비영리법인 봉사단체 ()음악연대를 창립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도 ()음악연대의 창립이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친구의 숭고한 마음을 이해해 주는 아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예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베토벤이 되고 모두가 파바로티가 될 수 없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작은 공연, 환 암자들과 주위 가족들에게 한순간이라도 위안을 줄 수 있는 소박한 무대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이번 창립공연에 많은 분들이 자원봉사로 재능기부를 합니다. 친구 원용이가 섹소폰 연주를, 목포시립합창단 지휘자 항구가 솔로를, 명완이가 시낭송을 합니다.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했는지, 연습은 잘 되어가고 있는지 걱정이 앞섭니다. 돈 많은 친구들이 골프만 치지 말고 이런 뜻깊은 일에 동참했으면 좋겠습니다. 시낭송을 하는 친구 명완이는 지난번 시낭송 공연에서 받은 출연료 전액을 이번 창립공연의 제작비로 전액 기부했다고 합니다.

 

세상은 아직도 희망이 있습니다.

마음이 따듯한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주위에는 예술의 사각지대에서 소외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꿈을 주고 위안이 되는 공연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병을 앓아 본 사람만이 환자의 마음을 안다고 합니다.

승희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승희 대신 팜프렛을 보내준 병복이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공연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아침이 밝아옵니다.

곧, 어제 목포 바다에 숨었던 그 태양이 다시 떠오르겠지요.

목포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친구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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