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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엄마와 떨어져 가기 싫어하는 너희들을
미국에 데리고 간 지 어언 16년이 지났구나.
아빠와 함께 영어 단어를 공부하던 너희들은
불과 6개월 만에 아빠를 앞질렀다.
한국 친구들을 두들겨 패는 미국 애들을
그냥 볼 수 없는 너의 의협심이 핸콕 파크를 떠들썩하게 했었지.
교장실을 찾아가던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학위논문 통과 소식을 듣고
엄마는 산책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모양이다.
압박감을 이겨내며
하나의 성취를 일궈낸 네가 자랑스럽구나.
삶은 자신과의 약속이고
너는 그 싸움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옛 앨범을 뒤지다가
티 없이 맑고 밝은 사진 하나를 골랐다.
아빠가 날리던 시절,
러시아 교수가 우리 집에 왔을 때
아빠가 포착한 순간이다.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그때 아빠는 대학에 사직서를 내지 않았겠지.
아빠의 그때 결단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어 고맙구나.
푹 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오늘은 푹 자거라.
네가 찍은 보름달 사진 꺼내보면서,
보름달 밑에서
함께 삼겹살 굽는 소박한 꿈을 꾼다.
어제 촬영한
갓바위의 야경을 보낸다.
세찬 바람과 거친 파도를 이겨낸
갓바위의 위용이 아름답구나.
갓바위의 야경을 함께 볼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며.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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