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금사정과 천연기념물 동백나무’를 읽고 쌍계사에서 수양 중이던 친구 춘길이가 카톡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동백꽃은 통꽃으로 피어 얼마 되지 않아 통으로 떨어져 바닥에서 빛나는 시간이 더 길다.
죽어도 아름다운 선비정신. 아직 쓸만한 한참 나이에 죽기를 거부하지 않는 그 정신, 그걸 본받으려 했다.
꽃은 아름다울 때, 져야 한다고 외치는 것 같다.
금사정, 가봐야겠다.”
2년 전, 금사정의 유래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을 친구 춘길이도 느끼는 것 같다. 동지를 만난 기분이다.
금사정과 동백나무의 정신에 대해서 더 설명할 필요를 느낀다.
금강계는 여느 계와는 달리 그 성립 동기부터 특별한 의미가 있다. 성균관 유생 240여 명이 조광조의 억울함을 임금께 아뢰고 옥에 함께 갇히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자 호남 유생 11인이 벼슬에 대한 뜻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금강(錦江, 영산강) 위에 정자를 짓고 계(禊)를 결사하였다.
그들은 수계(修禊) 때에는 반드시 ‘존심양성(存心養性) 강의명리(講義明理)’의 여덟 글자를 벽에 걸어놓고 경전을 토론하고 성현의 교훈을 강론하며 연구하였다.
금사정(금강정)을 짓고 계(禊)를 결사한 11인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백호 임제의 조부 임붕(林鵬), 당대의 석학 기대승이 효자로 극찬한 정문손(鄭文孫), 금호공의 조부 나일손(羅逸孫), 진세공(陳世恭), 김식(金軾), 진이손(陳二孫), 김구(金臼), 정호(鄭虎), 진삼손(陳三孫), 김두(金豆, 斗), 김안복(金安福).
‘수계(修禊)’ 라는 말은 왕희지의 난정기(蘭亭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일반 계(契)는 먹고 마시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하는데, 수계는 흐르는 물에 몸을 깨끗이 씻고, 계제사(禊祭祀)를 올리고 개울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까지 시(詩) 한 수를 읊는 놀이를 말한다.
성리학에서 출발한 절의(節義) 정신은 고려말의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나진(羅璡)을 거쳐 기묘사화 이후 사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게 된다. 또 금사정을 중심으로 영산강 주변에 분포된 정자들은 풍류와 토론, 강학과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되어 호남정신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금강계 후손들은 선인들의 유지를 받들어 근 500년 동안 금강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선대들의 선비정신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조명하고, 금사정과 동백나무를 교육과 관광으로 연계시키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아래의 시는 승지공 나일손의 장남 창(昶)의 계축시(禊軸詩)다. 동백꽃을 심은 선비의 마음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죽청송심(竹清松心)
십유일인분사구(十有一人枌社舊)
한송심사죽청진(寒松心事竹淸眞)
차생영췌수선후(此生榮悴誰先後)
막학도화난작춘(莫學桃花爛作春)
열 하고도 한 사람이 옛 고향에서 모였으니
겨울 소나무의 심사요 대나무의 맑고 참됨이로다
이생의 영고성쇠가 앞뒤로 오건만은
따스한 봄날에 흐드러지게 피는 복사꽃만은 배우지 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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