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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잠일기(栢蠶日記)

주룡마을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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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룡마을

 

주룡마을 당산나무

 

소포 나덕명 충신각

 

소포 나덕명 유허비

 

충신각에서 바라본 망모산

 

이하 회산 백련지에서

 

 

 

 

 

 

 

 

소포(嘯浦)는 임진왜란의 공신(功臣)인 나덕명의 호다.

자는 극지(克之)이며, 귀암(龜菴)이라는 또 다른 호가 있다.

 

기골이 장대하여 담력이 컸으며, 29세인 1579(선조 12)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으나 그것이 마지막 벼슬이었으며, 일생을 야인으로 살았다.

 

아버지 금호공 나사침((羅士忱)의 장남으로 1551(명종 6) 나주에서 태어나, 1610(광해군 2) 향년 60세의 나이로 여생을 마쳤다.

 

주룡나루에서 도보로 100m 걸어가면 2번 국도가 나온다. 그 도로의 지하를 건너가면 큰 망모산과 작은 망모산이 보인다. 이 두 산을 사이에 두고 아담한 마을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앞은 수령 500년 이상의 웅장한 당산나무가 버티고 있다. 첫눈에 봐도 예사로운 마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주룡마을이다.

소포가 정유재란이 끝난 후 입향, 정착한 이 마을은 지금도 나주나씨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마을 앞, 일로읍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충신각(忠臣閣)이 마을을 향해 자리 잡고 있다. 충신각 옆에 나덕명의 유허비(遺墟碑)가 우뚝 서 있다.

 

나주 출신의 소포공이 어인 일로 영산강의 하류인 이곳까지 내려오게 되었을까.

 

주룡마을을 가로질러 망모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제각(祭閣)이 하나 나온다. 소포를 기리는 사당 소포사(嘯浦詞)다.

 

소포사를 옆으로 끼고 올라가면 꽤 넓적한 묘역이 나온다.

각 묘소 앞에 웅장하게 자리 잡은 묘비석을 보게 되면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안군의 조그만 시골 마을에 대단한 분들이 잠들어계신다. 소포도 그분들 중의 한 분이다.

 

그런데 소포공보다도 더 위쪽에 자리 잡고 계신 분이 있다. 소포의 아버지 금호공 나사침의 묘소다.

 

금호공 나사침!

그분이 나의 14대 선조이시다.

 

공은 1525(중종 25)에 태어나 1596(선조 29) 향년 72세로 생을 마치고 이곳 주룡 선산에 잠들어계신다.

 

금호공의 사당은 나주에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금호공은 중종(中宗)으로부터 효자로 정려(旌閭)를 받았다.

 

금호공을 포함 그의 여섯 아들을 배향하는 나주 금호사 근처에는 나주나씨 삼강문(三剛文)이 있다. 물론 나주 반남면에도 또 있다.

 

나주나씨의 삼강문은 여타의 삼강문과 차이가 있다. 금호공을 포함 3()2(), 2(), 4()의 정려를 받아 3세(세) 8정(旌)을 이룩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대하소설 10권은 나온다.

그런데 나는 나주나씨 시조로부터 나의 이야기까지를 쓰려고 한다.

 

역사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오늘 저녁 회산(回山) 백련지(白蓮池)를 다녀왔다.

일로의 저녁노을을 보기 위해서다.

 

인의산(仁義山)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조상들이 잠들어계신,

갈룡산과 망모산을 바라보면서...

 

                                 백잠일기 초

                                 2021년 9월 12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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