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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잠일기(栢蠶日記)

주룡의 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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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신비하다.

어제는 일로 하늘에 저녁노을이 불타오르더니

오늘은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혔다.

 

540분이 되면 주룡 조형물을 비추는 조명등은 꺼진다.

오늘도 정확하다.

 

여명과 함께

철교 위의 하늘은 빛의 향연이 시작된다.

 

완연한 일출은 없지만

나루터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신비 그 자체다.

 

주룡의 변화무쌍한 하늘을 구태여 묘사할 필요는 없다.

사진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무영교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한 폭의 산수화가 연출된다.

 

날이 밝아지면서 상사바위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지금 둘레길을 조성 중이다.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그렇지만 조금 무리를 해서 철 칸막이를 뛰어넘는다.

 

둘레길 바닥은 장판처럼 매끈하다.

벌써 세 번째 이 길을 걷는다.

 

멀리 은적산으로 시선을 돌린다.

은적산.

 

반계공(潘溪公) 나덕현(羅德顯)은 금호공 나사침의 4남으로 1565(명종 21)년 나주에서 태어났다. 학문이 심대하여 경현서원(景賢書院) 원장을 지냈으며, 1625( 인조 을축년) 향년 61세로 별세했다.

 

은적산과 깊은 사연이 있다.

정유왜란이 일어나자 몸소 모친을 업고 은적산 숲속으로 도망치다가 적들을 만났다. 적들이 칼을 휘두르며 길을 막자 공은 모친을 껴안고 외쳤다.

 

차라리 나를 죽이지 우리 늙으신 어머니는 다치게 하지 말라.”

 

적들이 감동하여 참으로 효자이다.”하고는勿害孝子(물해효자)’ 네 글자를 비단에 써 주었다. 효자를 해치지 말라는 것이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이걸 보여 주면 무사할 것이요

 

반계공의 효성이 적들을 감동시켜 자신과 모친의 생명을 지킨 것이다.

 

비극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왜구를 피하면서 어머니 모시기에 급급했는데, 아내 하동 정씨(河東 鄭氏)와 동생들이 모두 적의 포로가 되었다.

 

포로가 된 부인은 시누이인 윤항((尹沆)의 처인 나씨와 함께 치마끈으로 몸을 묶었다. 그리고 함께 잡힌 일행에게 말했다.

 

네가 만일 살아 돌아가거든 우리 두 여자의 일을 말해 주어라.”

 

말을 마치자마자 강물에 투신한 것이다. 당시 주룡강으로 불렸던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는 당시의 상황을 양부투해도(兩婦投海圖)’라는 그림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그 후 하동정씨와 나씨(羅氏) 부인은 1623년 임금으로부터 열녀(烈女)라는 정려를 받게 된다.

 

하동정씨는 금호공 나사침의 며느리이며 나씨 부인은 금호공의 딸이다. 다시 말해 금호공 나사침의 4남 반계공의 부인과 누이가 되는 셈이다.

 

이제 비밀의 문 하나를 연다.

나는 나주나씨(羅州羅氏) 반계공파(潘溪公派)다. 다시 말해 반계공 나덕현의 후손이다.

 

멀리 은적산에 태양이 떠오른다.

상사바위 쪽으로 백로 한 마리가 날아 가고 있다.

무심한 영산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백잠일기 초

202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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