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잠일기 초(抄)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주룡은 다른 곳과 다르게 일출 기미가 보였다.
은적산에 운무가 깔리며 하늘이 다시 어두워진다.
상사바위 쪽만 윤곽이 뚜렷하며 나머지는 온통 운무에 젖었다.
철교 위의 하늘도 다시 회색빛으로 변하며 비가 내릴 기세다.
6시 40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거세지며 영산강의 물결이 바다처럼 거칠어진다.
땅에 떨어진 능소화가 애처롭다.
우산을 들 수 없어 용호정(龍湖亭)으로 몸을 옮긴다. 사람들은 족보 없는 이 정자를 더 선호한다. 강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주룡나루의 아름다움 속에는 아픈 역사도 숨어 있다.
며느리와 딸을 강물에 잃은 금호공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내와 여동생의 시신을 강 속에서 건져낸 반계공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제수씨와 여동생을 삼킨 저 강을 바라보던 소포공의 슬픈 눈망울이 왜 떠오르는 걸까?
갈 길이 멀다.
금호공의 아들 여섯 중 이제 두 분만 약식으로 언급한 셈이다.
네 분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소개해야 할 분이 있다.
8시쯤 비가 다시 멈추었다.
차를 몰고 주룡마을을 지나 경모재(景慕齋)로 향한다.
터널 속에서 보는 건물의 모습이 제법 운치가 있다.
방치된 지 몇 년이 지난 고직사(庫直舍)도 겉으론 그럴싸하게 보인다.
계단을 오르면 갈룡산(渴龍山)이 보인다.
용이 갈지자(-之字)로 올라가는 형국이라고 갈룡산(乫龍山)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옛 족보와 묘비석에는 판문강 간룡등(板門崗艮龍嶝)이라 적고 있고. 판문치(板門峙)라고도 불렀다.
풍수가들은 이곳을 옥녀(玉女)가 피리를 부는 명당이라고 한다.
이 갈룡산에 잠들어 계신 분이 있다.
주룡의 역사를 가장 먼저 열었다.
일로읍의 일로((一老) 지명을 지은 분이다.
나주에 나주나씨 가기(家基)의 터를 마련하니
그 후손들이 번창하여 호남의 명족(名族)이 되었다고 한다.
초대 무안 현감과 나주 목사를 겸직했다.
무안공(務安公) 나자강(羅自康).
그분이 나주나씨 9세조(世祖)이며, 나의 직계 조상인 것이다.
비가 내린 어제에 이어,
오늘,
주룡에 들러 다시 갈룡산에 오른다.
묘지에 오르는 계단이 천국의 문처럼 높다.
그 계단 위로 청명한 하늘이 보인다.
2021. 0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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