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몸에는
금남 최부 선생의 피가 흐르고 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글도
써야 할 시기가 있다.
내 몸에
금남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단독의 블로그에는
의도적으로 올리지 않았다.
이제
이 사실을 공개할 시기가 되었다.

다음의 글들은
필자가 <<무안문화>> 통권 25호에 발표했던
<문중 문화자원의 활성화 방안>
- 유교리 고택을 중심으로- 에서
발췌하였음을 밝힌다.
여러분은
500년 수령의 나주 왕곡면의 동백나무와 금사정을 기억할 것이다.
그 주인공
승지공 나일손의 가계로부터
출발한다.

무안공(務安公)의 손자 승지공(承旨公) 일손(逸孫)은 다섯 아들을 낳았는데 이들이, 곧 창(昶), 고(暠), 요(曜), 질(咥), 서(曙)이다. 일손의 다섯 아들은 모두 등과(登科)하여 나주나씨의 위상과 긍지를 드높이게 된다.
여기서는 그들의 등과 현황만 소개하고 무안과 깊은 연관이 있는 장남 창(昶)과 4남 질(咥)의 이야기로 넘어가겠다.
장남 : 창(昶)
-생원 : 연산군 7년(1501) 신유 식년시(式年試)
-생원 2등(二等), 15위(20/100)
-문과 : 중종 5년 (1510) 경오 식년시(式年試) 兵科 4위(14/33)
차남 : 고(暠)
-생원 : 중종 2년(1507) 정묘 증광시(增廣試)
-생원 3등(三等) 43위(73/100)
삼남 : 요(曜)
-생원 : 중종 2년(1507) 정묘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7위(37/100)
-문과 : 중종 8년(1513) 계유 식년시(式年試) 丙科 6위(16/33)
4남 : 질(咥)
-무과 : 중종 23년(1528) 무자 식년시(式年試) 乙科 2위(5/28)
5남 : 서(曙)
-진사 : 중종 23년(1528) 무자 식년시(式年試) 3등(三等) 59위(89/100)

승지공 일손의 장자였던 지재공(止齋公) 창(昶)은 1477년(성종8) 5월 10일에 출생하였다. 1501년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고 1510년에 문과에 장원으로 올라 한림원(翰林院)에 선발되었으며, <면성지(綿城誌)>의‘선생안(先生案)’과 <무안군지(務安郡誌)>의‘읍제안(邑宰案)’에 따르면 1516년(중종 11년) 5월 9일 무안현감으로 도임하여 1518년 4월 16일에 해남현감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창은 그후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경사와 도의를 가르치던 동궁사서(東宮司書)와 승정원 주서(注書), 사헌부 지평(地平)과 사간원 헌남(獻納), 의정부 검상(檢詳)과 사인(舍人)을 거쳐 형조정랑(刑曹正郎), 성균관 사예(司藝, 정4품)와 세자시강원에서 왕세자에게 경서, 사적(史籍), 도의를 가르치는 직무인 필선(弼善, 정4품)을 역임하였다. 특히 국왕인 중종(中宗)의 특별한 사랑을 입어 어연(御硯, 벼루)과 어병(御屛, 병풍)을 하사받았다.
승지공의 넷째 아들인 감찰공(監察公) 질(咥)은 <표해록(漂海錄)>을 저술한 금남 최부(崔溥) 선생의 둘째 사위이다. 첫째 사위가 유성춘(柳成春)과 미암(眉庵) 유희춘(柳希春)의 아버지 유계린(柳桂隣)이니 미암과 감찰공 나질의 아들들은 이종사촌간이다.

나질의 장인인 금남 최부는 김종직의 문인으로 호남을 대표하는 선비이자 성리학자로 나주 출신이었지만 주로 해남에서 살았다. 최부는 1482년(成宗 13) 알성시(謁聖試) 문과(文科) 을과 1위로 급제하고 1487년 제주 등 세 읍의 추쇄경차관(推刷敬差官)으로 임명되어 제주로 건너갔다. 거기에서 다음 해 초에 부친상의 기별을 받고 곧 고향으로 급히 오는 도중에 풍랑을 만났다. 그들 43인이 탄 배는 14일 동안 동지나해를 표류하다가 해적선을 만나 물건을 빼앗기는 등 곤욕을 치르고 결국 명나라 태주부 임해현(台州府臨海縣)에 도착하였다.
왜구로 오인되어 전원이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조선 관원이라는 것이 증명되어 일행은 북경으로 보내졌다가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그는 상신(喪身)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상복을 벗을 수 없다고 고집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유가의 예와 윤리의 원칙에 대한 타협을 거부하였다. 성종은 그가 귀국하여 8,000리 길을 거쳐온 견문을 기술하여 바치도록 명하였다. 최부가 남대문 밖에서 8일간 머무르면서 기술한 책이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 3권이다.
금남은 1491년 지평(地平)에 임명되었는데 사헌부에서 서경(署經)을 거부하여 1년 후에 홍문관 교리로서 경연관(經筵官)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논란이 많아 결국 승문원 교리로서 낙착되었다. 논란의 요지는 부친상을 당한 금남이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로 곧장 고향으로 달려가야 할 것인데도, 아무리 임금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한가하게 기행문이나 쓰고 있었던 것은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에 관직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로 찬성과 반대가 들끓었는데, 성종의 보호에도 불구하고 그의 임명은 관철되지 못하였다. 이것은 사헌부·사간원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행정부 및 홍문관의 세력과 대립한 데에서 빚어진 권력투쟁의 단면이다.
금남은 연산군 때 일찍이 중국에서 배워온 수차(水車) 제도를 관개(灌漑)에 응용하는 시도를 했으며, 또 질정관(質正官)으로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러나 연산군의 잘못을 극간(極諫)하고 공경 대신들을 통렬히 비판하다가 무오사화 때 화를 입어 함경도 단천으로 귀양갔으며 거기서 6년을 지내다 갑자사화 때 처형되었다. 최부의 표류기는 우리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도쿠가와시대(德川時代)에 여러 가지 판본과 사본이 통용되고 있었으며, 일본어 번역본까지 나왔는데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라는 이름으로 1769년(영조 45)에 간행되었다.

금남 최부의 사위 감찰공 나질(羅咥)은 1488년(성종 무신)에 태어나 1528년(중종23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奉事)와 광흥주적(廣興主籍) 및 사헌부 감철을 역임하였다. 그는 장인의 역사적 회오리 속에서 일찍이 관직을 버리고 자녀 교육에 전념했으며 세인들에게 청백리(淸白吏)라는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다. 또 손이 끊긴 장인 금남 최부의 집안을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
감찰공(監察公) 나질은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사선(士愃) 사돈(士惇) 사침(士忱) 사척(士惕)으로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하였다. 사침은 16세 때 어머니가 병으로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봉양하여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여 효자로 정려를 받았다.
나사침은 명종(明宗) 10년(1555)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33위(63/100)로 사마시에 합격했다. 1568년 서교 송찬(宋贊)이 호남을 순찰하다가 전라도의 훌륭한 선비로 김응기, 김천일, 유호인, 김윤, 나사침 등 다섯 사람을 천거했는데, 그중 나사침을 으뜸으로 여기고 학문과 행실이 갖추어졌다고 칭송하였다. 사침은 1571년에 선릉참봉에 제수되었으며 5년 뒤에 경기전참봉, 의금부도사, 종묘직장, 사헌부 감찰을 역임하였다. 1584년 니산현감((尼山縣監)이 되어 청덕거사비(淸德去思碑)를 세울 정도로 정치가 청렴하고 간결하였다.
1589년에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동복(同福) 사람인 정암수(丁巖壽) 등 30여 명이 상소를 올려 정여립(鄭汝立, 1546~1589)과 관련된 자들을 처벌할 것을 요청한다. 이 상소에 나사침과 그의 아들 덕명, 덕준, 덕윤의 이름이 거론되어 3형제는 경성(鏡城), 부령(富寧), 회령(會寧)으로 유배되었고, 사침만 <후한서(後漢書)>의 ‘위표열전(韋彪列傳)’에 나오는‘충신은 반드시 효자의 가문에서 구한다(求忠臣必於孝子之門)’는 내용을 인용한 선조의 전교로 석방된다.
1596년 12월 23일 향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나사침은 그의 유언에 떠나 일로의 주룡마을에 잠들게 된다. 무안공 자강에 이은 사침의 일로 유거는 나주나씨의 무안행을 더욱 가속화 시키는 계기가 된다.

조금은 복잡하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나주나씨 일손의 4남 나질과
탐진최씨 최부의 2녀가 결혼하여 나사침을 낳았다.
본인을 포함하여
3대에 걸쳐
충신 2인, 효자 2인, 열녀 4인을 배출한
충효열의 표상
금호 나사침과 그의 형제들은
모두 금남 최부의 외손들이다.
그 후손인 필자가
'내 몸에 금남 최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주장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인간이 움직이는 일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
조상의 부름일 수도 있고
영감일 수도 있다.
작가는
그날 그렇게
영산강의 석양을 담았던 것이다.
금남정과 느러지 전망대를
수차례 오가며...

'백잠일기(栢蠶日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실을 말하자면(完) (2) | 2026.07.11 |
|---|---|
| 천하제일련(天下第一蓮) (0) | 2026.07.06 |
| 초승달이 질 때까지 (0) | 2026.06.17 |
| 행복한 시간 (0) | 2026.05.30 |
| 어버이날에 (0) | 2026.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