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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현장

시제(時祭)의 축제화와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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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시 대호동(버스 안)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어느 해
어느 달보다도
길고 긴 한 달이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푹 쉬었습니다.

그제(29일)
강화에서 대종회 정기총회가 있었습니다.

100여 분의
종친들이 멀고 먼 강화에 모였습니다.

목포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하여
저녁 9시 4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강화에 사시는
연기자 김진태 선배와 통화만 하고
그냥 내려왔습니다.

대종회보 <통합과 안착>에 게재한
원고 올립니다.

다른 문중에도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조금은
평온한 4월을 소망합니다.
 

나주나씨 시조 사당 추원당의 가을


시제(時祭)의 축제화와 역사탐방

 
모든 인간은 부모로부터 태어났다. 그리고 결혼하여 부모처럼 자신의 후세를 남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어미로부터 태어나 새끼를 만들어 종(種)을 이어간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공통점은 새끼를 보호하고 양육시킨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인간은 진화하면서 규범과 기준을 만들어 여러 단계의 의례(儀禮)를 고안해냈다. 인간의 의례는 문화적 질서다. 극소수의 동물을 제외하고는 동물은 어미를 부양하거나 조상을 공경하지 않는다. 아마 이 점이 동물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례의 정점은 주자가례<주자가례(朱子家禮)>가 아닐까? 조선의 사회는 주자가례를 충실히 따르는 유교적 사회였다. 따라서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하는 모든 의례는 자손이 번성하고, 조상을 모시는 일에 집중되었다.
 
서구문물의 유입과 산업화로 주자의 가례는 그 설 땅을 잃었다. 혼례와 상례(喪禮)는 전통과 외래문화와의 충돌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제례(祭禮)에 있다.
 
부모 제사까지는 그래도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 제사로 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갸륵한 장손(長孫)만이 연례행사를 치르느라 죽을 맛이다. 시제(時祭)로 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5대조 이상의 제사인 여러 시제에 참여하면서 많은 생각을 수없이 했다.


추원당의 설경


조상들의 산소와 멀리 떨어져 있는 경향 각지의 후손들이 자신의 일터와 일상을 뒤로하고 조상님의 시제에 매년 참석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위토답(位土畓)이 있는 문중이나 여유 자금이 있는 문파는 시제 참여자들에게 여비를 준다. 하지만 참여하는 후손들이 많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후손들을 나무랄 수 없는 문제다.
 
시제에 참석하는 후손들의 연령층을 고려해보면 미래가 암울하다. 꼭 우리 씨족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유를 부린다면 안일한 생각이다. 이에 조심스럽게 담론(談論)을 꺼내어 본다.
 
한국의 장묘문화와 장례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문화적 질서도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 시제에 참여한 후손들의 주 연령층은 60대 이상의 어르신이다. 이제 다음 세대들에게 시제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씨족이나 문중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시제도 축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후손들이 모여 조상님을 숭배(崇拜)하며 친목을 도모하며 정(情)을 나누는 축제의 장(場)이 되어야 한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지금의 홀기(笏記)와 경건한 제례로는 젊은 층을 흡수할 수 없다.
 
연극의 기원이 제사로부터 출발했다. 서양연극의 개념인 ‘Theatre’도 제사를 지내는 장소인 ‘Theatron’에서 유래했고, 동양연극의 개념인 ‘극(劇)’이나 ‘희(戱)’도 제사의 개념에서 출발했다.
 

나주 금호사의 설경


제의에서 출발한 연극적 형식을 시제에 도입하자. 선조들의 이야기를 극화하고 선조들이 남긴 글과 시(詩)를 낭송하고 선조들의 역사를 이야기하자. 시제를 마치고 선조들의 숨결이 흐르는 역사의 현장으로 함께 떠나는 것은 어떨까.
 
씨족과 관련 없는 외국 여행을 떠날 것이 아니라, 씨족들의 발자취를 찾아 함께 역사탐방을 가는 일은 뜻깊은 일이다. 시조 단(壇)이 있는 나주 보산동을 거쳐 금호사 - 삼강문 – 택촌마을 – 왕곡마을 동백꽃을 구경하고, 금남(錦南) 최부(崔溥) 선생의 늘어지마을을 참배하고, 일로 갈룡산(渴龍山)과 망모산(望母山)을 들러 영산강 주룡나루에서 자랑스러운 나주나씨의 역사를 되새겨 보자.
 
다행스러운 것은 올해부터 나주 왕곡면의 금사정(錦社亭)에서 동백꽃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를 시발로 하여 우리 나주나씨 종친들의 역사축제에 시동을 걸자.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선조들의 선비정신이 응축된 금사정과 천연기념물 동백나무에 대해서 간략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나무 숲은 많다. 그러나 동백나무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예는 나주 금사정이 유일하다. 금사정은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조광조의 죽음 이후 그와 뜻을 함께했던 나주 출신 선비 11인이 고향으로 돌아와 '금강계(錦江禊)'를 결성하고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지은 정자이다.
 
 금사정 안에는 금사정 제액(題額)과 더불어 김만영(金萬英)의 '금강중수계서(錦江重修稧序)'와 나동륜(羅東綸)의 '금강정중수상량문(錦江亭重修上樑文)' 나정규(羅錠奎)의 시 등이 걸려 있다.
 


금사정의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동백나무 가운데 가장 굵고 수령도 가장 오래되어 천연기념물 515호로 지정되었다. 이 동백나무와 금사정을 말하기에 앞서 전라도 유학자들의 계보(系譜)와 성향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전라도 선비들은 처음부터 부당한 권력과 거리를 두었는데 대략 3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조선 건국과 더불어 명분 없는 왕권 탈취에 반기를 들고 고려왕조에 절의를 지키거나, 정쟁을 피해 전라도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많았다. 두 번째는 세조(世祖)가 조카 단종(端宗)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을 때도 많은 사대부가 남쪽으로 내려와 은거했다. 마지막으로 호남에 살면서 중앙정치와 거리를 두면서 조선 초기부터 지역에서 활동한 사람들이다.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들은 대부분 그들이거나 그들의 후손이다.
 
김종직(金宗直)의 수제자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이 평안도 희천에 유배되었을 때,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는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그곳에서 17세의 나이에 김굉필에게 배움의 기회를 얻게 된다. 연산군(燕山君)을 축출하는 반정에 힘입어 왕위에 오른 중종(中宗)은 사림(士林)을 중용했고, 조광조는 그 핵심인물이었다. 조광조는 왕도정치를 꿈꿨고 중종(中宗)을 성인군자로 만들고자 하였다.
 
사림의 중심에 있던 조광조는 정쟁에 밀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4년 만에 축출을 당하고, 이때 많은 수의 선비들이 화를 입게 된다. 이것이 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다. 조광조는 전라도 능주(화순)에 유배되었다가 12월 사약을 받게 된다.
  

임금 사랑하기를 어버이 사랑하는 것처럼
  나라 걱정하기를 집안 걱정하듯 하였노라.
  밝은 태양이 아래 땅에 내리쪼여서
  거짓 없는 이내 마음 훤하게 비추리라.

 
정암(靜菴)은 죽었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도 호남의 선비정신으로 이어진다. 원래 사림의 뿌리는 충절과 의리를 숭상하는 학문적 계통이다.
 
금사정은 나주 출신 나일손(羅逸孫), 임붕(林鵬), 김구(金臼), 진이손(陳二孫), 정문손(鄭文孫) 등 11인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영산강 강변에 지은 정자이다. 원래의 이름은 금강정(錦江亭)이었는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의 국란으로 멸실(滅失), 수차례 중수(重修)되었고, 그 과정에서 ‘금강결사(錦江結社)’의 뜻이 내포된 금사정(錦社亭)으로 바뀌게 되었다.
 
금사정 돌계단을 오르는 왼쪽에는 500년 수령의 동백나무가 있다. 그분들은 그곳에 왜 동백나무를 심었을까? 세월이 변한다 하더라도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며 사철 푸른 동백처럼, 추운 겨울을 이기고 핏빛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동백꽃처럼, 그들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다.
 
금사정은 나주시의 향토문화자료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금강계의 핵심인물인 승지공(承旨公) 나일손(羅逸孫)은 무안공(務安公) 자강(羅自康)의 손자이며, 금호공(錦湖公( 사침(羅士忱)의 조부가 되신다. 

나주 추원당의 은행나무

나주나씨 대종회가 젊은 층의 시제 참여와 우리의 역사에 깊은 애정을 갖고 미래 대안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호남의 선비정신은 부활 되어야 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항상 호남이 앞장섰다. 그 호남의 중심에서 충효열(忠孝烈)의 선봉에 서서 가문을 지켜온 나주나씨의 위대한 정신은 재탄생 되어야 하며, 후세들의 귀감(龜鑑)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대종회가 각 문파의 시제와 연계하여 각 지역에 유거(幽居)하신 선조님들의 정신적 가치를 탐구하고 역사적 발자취를 탐방하는 역사 투어에 앞장서 주시길 간곡하게 제안한다. 시제가 어르신들의 연례행사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젊은 층이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선조들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콘텐츠가 개발, 활용되어야 한다.
 
끝으로 승지공 일손의 장남 창(昶)의 계축시(禊軸詩)를 소개한다. 동백꽃을 심은 선비의 마음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죽청송심(竹清松心) 
 
십유일인분사구(十有一人枌社舊) 
한송심사죽청진(寒松心事竹淸眞) 
차생영췌수선후(此生榮悴誰先後) 
막학도화난작춘(莫學桃花爛作春)
 
열 하고도 한 사람이 옛 고향에서 모였으니 
겨울 소나무의 심사요 대나무의 맑고 참됨이로다 
이생의 영고성쇠가 앞뒤로 오건만은 
따스한 봄날 흐드러지게 피는 복사꽃만은 배우지 마세.

 
올해 금사정 동백꽃 축제는 3월 29일에 금사정 일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다. 올해는 인군 시군의 구제역으로 연기되어 5월 3일 개최될 예정이다. 또한 나주시가 금사정과 동백나무의 역사적 가치를 인식하고 왕곡면 송죽1리 일대를 동백마을로 조성하여 명소화할 예정이다,

금사정 동백아무 아래서 필자
2025. 3. 29, 김제시 죽산면(버스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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