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연극계의 큰 별 권성덕 선배님이 하늘의 부름을 받으셨다. 나주가 고향인 선배님은 나의 대학 16년 선배이시다.
대학 2학년때인 1978년 여름, 경기도 일영에서 처음 만났다. 김금지 선배와 함께 출연한, 야외극으로 만든 연극 <생명의 소리>로 기억한다.
46년의 긴 인연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것일까. 한국에 있을 때는 선배님이 출연하는 작품의 공연장을 자주 찾아갔다. 주로 국립극단의 작품이 많았는데 가끔 외부 작품에 출연하기도 하셨다.
선배님은 애주가였다. 공연이 끝나면 항상 근처의 술자리로 자리를 옮겨 통행금지 1시간 전까지 연극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한 번도 술을 거른 적은 없었다.
경기대 시절은 대학로 '우가(優家)'에서 자주 뵈었다. 약속하지 않아도 우가에 가면 원로 연극인들과 함께 꼭 계셨다. 일 주일에 두 번 이상은 그렇게 만났다.
동향이어서일까. 동문이어서일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주 만났던 것은 서로에게 끌리는 뭔가가 있는 것같다.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광주로 내려오면서 우리들의 만남이 뜸해졌다. 카톡만 주고받기에는 서로가 좀이 쑤셨다. 그래서 선배님을 한 달 이상 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짰다.
시립극단에서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를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젊은 연극인들의 가장 큰 취약점은 대사였다. 이러한 결점도 보완하고 젊은 배우들과의 대화를 통해 건강도 회복하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홍어를 좋아하시는 선배님이 거절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일 주일에 한 번씩 광주에 내려와 젊은 배우들의 화술을 지도하셨다.
내려오시는 첫날부터 홍어가 맛있는 곳을 모시고 다녔다. 영산포 홍어거리에 가서 홍어애국도 먹었다. 나중에는 선배님의 처남까지 합세하여 홍어 순례를 하게 되었다.
애석하다. 목포에 오시지 못하고 먼 길을 가셨다. 그렇게 오시고 싶어하던 목포에는 내려오시지 못하고,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가셨다.
선배님이 사경을 헤매고 계시던 그 시각, 나는 선배님의 고향 나주에서 호랑나비를 만나고 있었다. 활짝 핀 만수국(萬壽菊)에 호랑나비 한 마리가 기적처럼 찾아왔다.
한국 연극무대의 큰 별, 대배우 권성덕은 10월 13일 오후 3시 50분에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대배우의 고향 나주, 엣 읍성의 남고문 야경을 함께 올린다.
천국에서 만수를 누리소서.
상만 올립니다.

병마 잊게 한 신들린 연기…권성덕 "연극이 안식처" (2018.09.04/뉴스투데이/MBC) (youtube.com)


















맑은 예술혼과 치열한 장인정신으로
연극인의 귀감이 되신
대배우의 영결식은
대한민국연극인장으로
16일 10시에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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