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며 하염없이 내리고 있다. 그런 우중에도 새벽달이 잠시 떴다, 운 좋게도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참으로 시원하다. 가을비는 뜨거웠던 여름을 보상이라도 하듯 시원한 바람을 몰고 왔다. 이쯤에서 적당히 그쳐야 할 건데 장마로 이어지면 또 걱정이다.
날씨가 시원한데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을 맞이하였다. 처음부터 그날의 새벽을 소환하고 싶었다. 한가위 날 새벽에 절두산 천주교 성지에 다녀왔다.
절두산은 원래 산의 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것 같다고 해서 잠두봉(蠶頭峰)이라고 불렀다. 경치 좋은 한강의 명승지 중 하나였는데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 과정에서 이 봉우리의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잠두봉에서 무려 8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형으로 목이 잘린다. 시신이 한강에 던져지는 이 집단 처형이 벌어진 후, 머리가 잘린 산이라는 의미의 절두산(切頭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얼마나 참혹한 사건인가. 박물관의 그림을 보지 않아도 절벽 아래에 피가 낭자하고 시체가 쌓여 있는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그 참혹한 현장인 양화나루와 절두산을 새벽에 방문한 것이다,
1956년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땅을 매입하여 순교성지 성역화 사업에 앞장섰다, 1967년에 순교성지 기념성당과 박물관 건물을 지었다. 한강이 바라보이는 성지 안에 한국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이 있다.
1984년에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대한민국 땅을 밟은 뒤 공식 일정 중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이 성지라고 한다. 기념성당을 비롯해 순교박물관 등 각종 시설이 잘 마련돼 있어 전국의 신자들이 자주 찾는 순례지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에 가면 양화나루와 절두산 성지를 자주 찾는 편이다. 블로그에도 몇 번 소개한 적이 있다. 오늘은 김대건 신부의 동상과 한강 건너편의 새벽 풍광을 소개한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부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모방 신부의 도움으로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 교육을 받았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임명되었다.
조선에 돌아와 전교 활동과 선교사들의 입국을 돕다가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내가 방문한 그날 새벽이 순교 다음 날이 되는 셈이다.
종교를 떠나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가. 김대건 신부의 열성적 전교 활동과 경건하고 당당한 신앙 자세는 이후 천주교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유네스코는 2019년 11월 14일에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2021년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하였다.
성인을 만나는 새벽, 한강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속절없이, 무심하게!
그날
서울의 새벽은 몹시도 더웠다.
하지만
순교자들의 죽음 앞에서
날씨와 계절을 말하는 것은
사치요 만용이 아닐까.
삼가
고개를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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