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천연기념물 제515호인 동백나무를 소개한다. 동백나무숲 전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례는 있으나 동백나무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우는 나주 왕곡면의 금사정(錦社亭)이 유일하다.
금사정 동백나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이 나무를 심은 주인공이 나의 선조이시다.
블로그를 통해 이미 수차례 소개한 바 있지만, 자세히 소개하자면 소설 몇 권이 나와야 할 것이다.
이 동백나무를 심은 분과 금강계 11인에 대해선 아래에 첨부한 기존의 블로그를 참고하기 바란다. 다만 오늘은 이 동백나무를 심은 승지공 나일손에 대해 조금 언급하고자 한다.
여러분은 일로 갈룡산에 누워계신 초대 무안현감 무안공(務安公) 나자강(羅自康)을 기억할 것이다. 주룡나루를 소개하면서 수차례 언급해왔다. 그리고 유교리 고택의 당호를 ‘무안당(務安堂)’으로 정하고 싶다는 말도 기억할 것이다.
승지공(承旨公) 나일손(羅逸孫)은 무안공의 손자이다. 무안공은 계조, 승조, 봉조의 3형제를 두었는데, 승지공은 장사랑공(將仕郎公) 계조(繼祖)의 아들로 태어났다.
승지공은 슬하에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문과 2, 무과 1, 사마시 2인의 인물을 배출하였다. 특히 4자인 질(咥)은 표해록(漂海錄)을 저술한 금남 최부(崔溥)의 둘째 사위로 1528년(중종23년)에 무과급제를 하였다.
감찰공(監察公) 나질은 사선, 사돈, 사침 3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급제 벼슬하였고, 특히 3대에 걸쳐 충신 2인, 효자 2인, 열녀 4인을 배출한 금호공(錦湖公) 사침(士忱)이 질의 3자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간략하게 말해서 이 동백나무는 기묘사화(己卯士禍)라는 불합리한 정치에 저항한 선비정신의 상징으로 심어졌고, 그 주인공이 무안공의 손자라는 것이다.
또 이 주인공의 선비정신은 그 자손들로 이어져 충효열의 상징인 ‘금호사’로 탄생, 집약된 것이다.
무안시대를 연 무안공은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그의 후손들은 휘돌아치는 조선의 역사 속에서 꿋꿋하게 선비정신을 지켜온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유교리 고택은 이러한 선비정신의 살아있는 역사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나주 금사정의 유구한 동백나무에서 접목한 동백꽃이 무안땅 유교리에서 만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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