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달이 보름달에 가깝다. 오늘은 음력 10월 14일 입동(立冬)이다.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다.
어제 세 곳의 시제를 마치고 친족들과 왕산에서 식사를 했다. 오승우미술관을 거쳐 초의선사 유적지 용호백로정에서 담소를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커피도 마시고 마지막엔 아내와 함께 꿈섬의 저녁노을을 지켜보았다. 썰물로 드러난 바다와 물길, 저녁노을이 참으로 독특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것은 누구의 덕분인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부모님, 부모님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조부모님, 조부모님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증조부모님, 증조부모님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고조부모님......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매년 시제나 제사에 참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상의 산소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숨을 쉬고 내가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행운은 부모님과 조상님들의 덕분이다. 살아가면서 그 은혜만큼은 잊지 말아야 한다.
장례문화와 제사문화도 시대에 맞게 변화가 필요하다. 문중과 가문에 따라 합의를 거쳐 새로운 방법을 모색할 시점에 도달했다. 분명한 사실은 시대가 변하더라도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일은 우리의 아름다운 풍속이다.
그 옛날 교통이 불편한 시절에 농사를 지으면서도 아버지를 비롯한 어르신들은 그 많은 시제에 참석하셨다. 우리가 한번쯤은 겸허한 마음으로 생각해 볼 일이다.
저녁노을을 보면서 아버지 얼굴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자신이 지켰던 그 산소들을 멀리 떠나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기도의 한 곳에 잠들어계신다.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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