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이 없는 하루,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했습니다. 언어와 문자의 홍수 속에서 현대인들은 남의 얘기들을 많이 듣고 읽어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은가 봅니다. 저라도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글을 줄이고 사진도 줄여갈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저만의 시간을 더 많이 갖겠습니다. 충전의 시간을 늘리고 방전의 시간을 줄여갈 생각입니다.
‘한 컷으로 말한다’
새로운 카테고리 하나를 개설합니다. 보시는 분들의 부담도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가능한 한 설명도 줄이겠습니다. 어디서 언제 촬영했다는 정보만 기록하렵니다. 제목도 달지 않겠습니다. 작가의 의도가 감상자의 느낌을 구속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고 작품은 감상자를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보시는 분의 생각과 느낌을 존경합니다. 작품 101번부터는 발표되지 않는 사진을 번호를 붙여 올릴 계획이며, 작품 1번부터는 이미 블로그에 올렸던 사진을 골라 올릴 예정입니다.
첫 작품으로 ‘토가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선택했습니다. 카톡이 되지 않는 16일 새벽 영산강 끝자락에서 돌아오면서 자전거 터미널 앞에서 촬영했습니다.
원래의 제목은 ‘절규’였습니다. 토가리의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절규’인데 토가리가 새벽에 혼자 영산강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절절하고 애타게 부르짖을 이유는 없습니다.
토가리의 행동을 지켜본 연기(演技) 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하품’이 어울립니다. 하품은 수면이 부족하거나 산소가 부족할 때 나타나는 생리적 현상입니다. 주위 환경과 거기서 오랫동안 서 있던 토가리의 상황을 보면 하품 쪽이 더 신빙성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저는 ‘절규’가 곧 ‘하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절규는 현실에 대한 불만족의 의식적 행동이고, 하품은 현실에 대한 불만족에서 나오는 무의식적 행동입니다. 둘 다 현실에 대한 불만족의 행동입니다.
현대인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습니다. 절규하고 싶습니다. 소리지르고 싶습니다. 그러한 현대인의 생각을 이 배우 새가 대변해 줍니다.
또 현대인은 피곤합니다. 산소가 부족합니다. 살아가는 데에 매우 중요한 뭔가가 부족함을 절감합니다. 이 배우 새의 무의식적 행동이 뭔가가 부족한 우리들의 목마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품 101’의 제목을 굳이 달지 않는 이유가 확연하게 나왔습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첫날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설명을 달지 않았더라면 ‘절규’나 ‘하품’ 둘 중 하나는 ‘사고의 영역’에서 벗어났을 것입니다.
‘작품 101’을 제대로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각자의 제목을 붙여 보세요! 토가리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느끼셨다면 작가로서는 다행입니다.
피곤할 때 내 의지와 달리 저절로 나오는 ‘하품’처럼 ‘절규’도 스스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새벽은 영산강 끝자락에서 소리 한번 지르고 싶습니다!
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