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권위 있는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연기상, 작품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질적 성장을 거듭해 왔다.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영화제도 있다. 오늘도 수많은 영화제가 경향 각지에서 열린다.
한국 최고의 고전소설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의 고향 남원 땅,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제2회 ‘전라누벨바그영화제’가 개막한다. 춘향과 누벨바그는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도 기억이 확실하다. 벌써 45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대학 1학년 ‘영화개론’ 강의시간에 앙드레 바쟁(André Bazin, 1918. 4. 18 ~ 1958. 11. 11)과 누벨바그를 공부했던 기억, 프랑스문화관에서 누벨바그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영화를 즐겨보던 시절이 있었다.
누벨바그는 ‘새로운 물결(New Wave)’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로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1962년 절정에 이른 프랑스의 영화 운동이다. 무너져가는 프랑스 영화산업에 대한 반동으로 형성되어 주제와 기술상의 혁신을 추구했던 이 운동의 영향으로 미국과 유럽 영화는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 작가주의 영화에 눈을 뜬다.
그 영화제가 남원에서 개최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남원은 원래 영화의 도시다. 그걸 설명해 보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영화화되었던 이야기가 무엇일까?
그렇다. 춘향의 이야기 <춘향전>이다. 1923년부터 2000년까지 <춘향전>이 18번이나 영화로 제작되었다. 춘향의 고향이 어디인가? 그렇다. 남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영화로 제작된 주인공의 고향이 남원이다, 그래서 남원이 영화의 도시인 것이다.
한동안 누벨바그의 이름을 잊었다. 연극과 영화는 이웃사촌임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하고 연극을 가르치다 보니 앙드레 바쟁을 망각해 버린 것이다. ‘전라누벨바그영화제’가 나의 잠들었던 영화에 대한 짝사랑을 일깨워준 셈이다.
누벨바그의 영화 물결이 할리우드는 물론 세계 영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한국영화 역시 누벨바그의 신세를 지면서 성장했다. 그러한 영화계의 큰 물결이 이제 영화제의 ‘새로운 물결’로 이어지며 예향 전북, 춘향의 고향 남원에서 두 번째 행사를 시작한다.
영화제의 가장 큰 기능은 축제성에 있다. 창작자와 수용자 모두가 영화를 통해 소통하며 즐기는 마당이 되어야 한다. 어려운 여건에서 영화제를 이끌어온 관계자 여러분께 힘찬 박수를 보낸다.
문화와 예술이 관광은 물론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시대가 되었다. 한 편의 축제 콘텐츠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전라누벨바그영화제에 깊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주 특강을 주선해 주신 심가영, 심가희 대표께서 영화인연합회 전주지부의 고문을 맡아달라고 했다. 나중에 경기대 제자인 라아리 영화제 재단 이사장이 이 단체의 지부장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꼼짝없이 그물망에 걸려 고문직을 수락하게 되었다.
이번 영화제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이 영화제에 윤문식 배우를 연결하는 정도였다. 내년에는 이 영화제에 내 아이디어를 반영할 계획이다. 이름만 걸고 축사나 하는 고문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남원은 한국의 미와 전통이 살아있는 역사의 도시이다. 호남 제일의 누정 광한루에 갈 생각을 하니 지금부터 가슴이 설렌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을 들러 시를 짓고 읊었다. 선정을 베풀었어도 벼슬아치들은 싫다. 멋진 여성의 풍류시를 소개한다.
난조(신선이 타던 새) 타고 밤에 광한루에 드니
열두 칸 붉은 계단 난간 꼭대기까지 닿으려 하네
원컨대 상제께서 금봉황을 내려주셔서
인간에게 이별의 근심일랑 주시 마옵소서.
乘鸞夜入廣寒樓 (승난야입광한루)
十二丹梯欲盡頭 (십이단제욕진두)
願乞紫皇金鳳詔 (원걸자황금봉조)
人間禁得別離愁 (인간금득별리추)
기생 봉선(鳳仙)의 시다. 남원 권번의 으뜸이었던 수기(首妓)였는데 춘향 사당을 신축할 때 각지의 권번(券番)을 독려하여 모금을 주도했다고 한다. 이후 춘향 사당 제사의 제관을 기생이 맡았고, 봉선은 제수답(祭需畓)을 기증하여 경비를 충당하였다고 한다.
웬만한 남성보다 훨씬 대단한 여성이다. 문중 땅 팔아먹은 후손들도 많은데 춘향 사당 신축에 공들인 인물이 여성이다니. 영화제의 성공을 위해 정신없이 뛰고 있는 분들도 여성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전북 남성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남원은 역사가 깊다. 깊은 만큼 사연도 많고 스토리가 풍부하다. 영화는 스토리가 근간이다. 이야기 도시(Story City) 남원의 부활을 기대하며 누벨바그영화제의 성공을 기원한다.
내일은 새벽에 남원으로 출발합니다. 내일은 시간이 없어 내일 블로그를 오늘 올립니다. 사진은 영화제 관련 자료와 8월 마지막 날 전망 좋은 집에서 바라본 영산강과 저녁 노을, 산책길에서 담았던 꽃입니다. 철이 지났는데도 8월의 마지막을 지키는 꽃들이 아름답습니다.
멋진 9월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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