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흡연 장소가 있다. 가로등이 하나 있는 정자로 거기에 페인트통으로 만든 큰 재떨이가 있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담배를 피우면서 하루 일정을 설계하는 곳이다.
그 정자에서 마주 보이는 곳에 수국이 피어있다. 오늘 사진은 거기에 핀 수국을 오래전에 촬영한 것이다.
수국의 한자 이름은 수구화(繡毬花)이다. 말 그대로 비단으로 수를 놓은 것 같은 둥근 꽃이란 의미다. 꽃 이름이 수구화에서 수국화, 수국으로 변했는데 모란처럼 화려한 꽃이 아니라 잔잔하고 편안함을 준다.
수국의 학명(學名)은 ‘otaksa’라고 한다. 오늘날 학명에 식물 이름을 붙인 네덜란드 사람 주카르느(Zucarnii 1797~1848)가 28세의 나이에 식물조사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왔다가 ‘오타키’라는 기생과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오타키는 마음이 변하여 다른 남자에게 가 버렸다.
실연에 빠진 주카르느는 오타키의 높임말을 서양식으로 표기한 otaksa를 수국의 학명으로 명명하여 변심한 애인의 이름을 세상에 전해지게 했다. 변심한 애인처럼 수국의 꽃은 처음 필 때는 연한 보라색이던 것이 푸른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연분홍빛으로, 피는 시기에 따라 색깔을 달리한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수국의 원산지는 중국인데. 일본인들이 중국 수국을 가져와 교배시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원예품종 수국으로 만들었다. 불행하게도 이 과정에 암술과 수술이 모두 없어지는 거세를 당하여 씨를 맺을 수 없는 석녀(石女), 석화(石花)가 되어 버렸다.
우리 동네 수국은 벌과 나비가 오지 않는다.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암술과 수술이 없으니 왔던 벌도 도망간다. 불쌍한 수국이다. 수국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 동네 수국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처음부터 심은 꽃이 아니라 개화한 수국 화분 무더기를 정원 한곳에 모아둔 꼴이다. 숨 쉴 공간도 없이 만원 버스처럼 빼곡하게 세워놓아 볼품도 없이 시들어가고 있다.
꽃의 아름다움은 조화가 이루어져야 빛이 난다. 줄기 끝마다 작은 꽃들이 서로 옹기종기 모여 초록 잎을 배경으로 피어난 자태가 예쁘다. 우리 동네 수국은 주인을 잘못 만나 그 아름다움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게 다 세상사인지도 모른다.
요즘 카톡 문자와 영상을 하루에 수천 개를 지운다. 선거 막바지라 여기저기서 초 단위로 카톡을 올린다. 변명 같지만 하나하나 검색할 시간과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참글과 좋은 영상도 희생이 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불쌍한 우리 동네 수국은 사진도 이래저래 밀려서 오늘에야 겨우 빛을 보게 되었다. 5월을 넘길 수 없다는 심정으로 오늘 여기에 올린다.
수국아 너무 슬퍼 말아라.
이름도 없이 피고 지는 꽃들이 어디 한둘이랴. 하지만 너는 이름이라도 있지.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도 많단다.
그래도 수국이 말한다.
하루살이도 대를 이어가는데, 우리는 여기서 땡이다! 그리고 이렇게 구석에 처박혀 찬밥신세다!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내 마음만은 알아주렴. 널 예쁘게 담으려고 노력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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