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땅끝마을’로 알려진 곳의 원래 지명은 ‘갈두마을’이었다고 한다. 칡의 머리처럼 한반도의 정기가 뻗어 나가는 힘이 서려 있는 마을. 그곳을 일본인들이 ‘토말(土末)’이라 불렀는데 그것을 풀어서 ‘땅끝’이라 부르고 있다.
이미 유명해져서 고치기가 힘들다. 원래대로 ‘갈두마을’이 더 좋다. 끝(末)보다는 머리(頭)가 좋은 것이다. 머리는 시작이다. 한반도의 정기가 육지에서 바다로 연결되는 시작의 땅이 되었으면 좋겠다.
산의 이름은 지금도 남아있다. 갈두산(葛頭山)이다. 예부터 산자락에 칡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산에 꽃이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산철쭉이 땅에 딱 달라붙어 몇 송이 피어있을 뿐이다.
그날 우리는 호강을 했다. 꽃이 없는 갈두산에서 자란(紫蘭)을 발견했으니. 그것도 한 그루가 아니라 열 그루 이상은 보았다. 작년 이때쯤 일로 인의산에서 처음 본 난이다. 그 후 영암 마한공원에서도 보았는데, 그건 재배용이라 그림이 다르다.
해남은 우리나라 최남단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하여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 지정됐다. 유배지의 35%가 전라도였는데, 그중 50%가 해남으로 유배되었다고 한다.
정상에는 전망대와 봉화대가 있다. 봉화대는 옛날 이곳에서 불을 지퍼 뱃길을 유도했다고 한다. 봉화대에서 남쪽 아래로 500m 거리가 우리나라 육지부의 최남단, 북위 34도 17분 38초, 동경 126도 6분 01초 지점으로 조국의 무궁함과 땅끝임을 알리는 높이 10m의 탑이 있다. 탑의 모양도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연의 일치일까? 한 ‘생명’이 끝나는 그 시각에 땅끝에서 김지하 시인의 시비를 사진에 담았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시비 사진을 찍은 시각은 정확하게 오후 4시 33분이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다음날인 어제 운명철 교수께서 시 <哀哭, 김지하, 헌 생명 버리더니 새 생명 얻는군요>를 보내오셨다. 맘에 꼭 드는 한 구절을 여기에 올린다.
...
역사 속
언젠가 부활할
그의 ‘생명’을 떠올리며
...
'그들만'의 시간이 방금 지나갔다.
불공정과 불통의 시간이.
'우리 모두'의 시간을 소망해 본다.
공정과 소통의 시간을.
'타오르는 목마름으로'
새 머슴이 스스로 약속한 ‘국민의 머슴’을 항상 잊지 않기를 소망한다.
시인의 명복을 빈다.
2022년 5월 10일 0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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