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어린이날.
아내와 함께 보낸 흔적을 사진으로만 어제 올렸습니다. 남들이 볼 때는, 부부가 단순한 여행을 했던 것으로 판단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글을 쓰기에는 너무나 길고 아픈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옛날 일로역이 있었던 지금의 일로장터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아내는 자장면, 저는 짬뽕을 시켜 조금씩 나눠 먹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건립된 ‘백련문화센터’ 앞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일로라는 명칭을 무안공께서 작명했다는 사실은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이 공원 한가운데 바닥에도 무안공이 무안 초대 현감을 역임하셨고, 일로라는 명칭을 작명하셨다는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물론 조선 세종 때 이야기인데 고려 명종 때라고 잘못 기록되어 있지요!
아내와 두 번째 방문한 곳은 무안공의 사당인 경모재입니다. 제각을 지키는 사람이 거주하는 집인 고직사가 있는데 낡아 흉물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위 위토답까지 말끔하게 정리되어 조금은 말끔해졌습니다. 사진 속의 청호지는 바로 그 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세 번째로 갔던 곳은 무안공 후손들의 역사가 숨어 있는 곳입니다. 주룡나루에는 적벽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지금의 자리는 강이었고 원래는 적벽 위에 있었습니다. 무안공의 후손인 금호공의 장남 소포공((羅德明)이 말년을 보내며 그곳에서 시름을 달랬던 곳입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후에 충신으로 정려를 받으신 분입니다. 주룡마을 앞에는 그 충렬비가 지금도 있습니다.
주룡적벽은 제가 수없이 소개했던 아름다운 곳입니다. 풍광이 뛰어나 무안군에서 국비를 지원받아 수상데크로 둘레길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개방이 되지 않았는데 제가 먼저 갔었고, 그날 아내를 데리고 갔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적벽의 절경과 시원한 영산강의 풍광이 참으로 뛰어납니다. 강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넓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 깊이에 공포심까지 들기도 합니다.
바로 그 강, 그 수상스키가 지나가고 있는 그 자리에서 저의 조상, 할머니 두 분께서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정유재란 때 왜구의 배에 끌려가시다가 치마끈으로 두 몸을 묶고 투신하신 겁니다. 금호공 며느리 하동정씨와 금호공의 딸 나주나씨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강물에 투신하신 두 분은, 이 사실이 알려져 후에 왕으로부터 열녀(烈女)로 정려를 받았습니다. 하동정씨가 금호공의 4남 반계공 나덕현의 정부인이십니다. 지금 갈룡산의 무안공 산소 아래 반계공과 함께 누워계십니다.
저의 혈조(血祖)는 원래 금호공의 3남 금봉공(羅德潤)입니다. 반계공의 5대손 효천(孝天)이 대가 끊겨 금호공의 5대손 천일(天一)의 3자 문형(文亨)이 양자로 오게 되어 대를 잇게 합니다. 조금은 특이한 경우입니다.
공식적인 블로그에 제 개인의 씨족사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대략의 역사는 알아야 저의 결론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각설하자면 덕치 산소에는 반계공의 3세손 두수(斗壽), 4세손 만득(晩得), 5세손 효천(孝天), 6세손 문형(文亨) 할아버지를 모시는 세장산이며, 유교 문중은 그 후손들로 구성된 문중입니다.
어제 블로그에 올린 사진 속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 있습니다. 또 유교 문중의 재산으로 유교리 고택을 다시 인수하여 무안공 할아버지의 현판을 달고자 했던 저의 안타까움도 숨어 있습니다. 사진 속의 제 표정을 다시 보세요.
제 오늘의 이야기를 한 개인의 씨족사로 치부하지 말기를 간절하게 소망합니다. 제가 5월 5일 어린이날, 아내와 함께 무안공의 역사가 숨어 있는 일로로부터 삼향읍 덕치까지 탐방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는 고려로부터 시작하여 조선시대의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기축옥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조상들의 이야기를 문화와 예술로 풀어가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남기신 땅이 아니라 조상들이 남기신 정신을 후세에 남기고자 합니다. 무안헌(務安軒)을 중심으로 그러한 일을 펼치려고 합니다.
스타니스랍스키의 연기용어에 ‘서브 텍스트(Sub Text)’라는 것이 있습니다. 배우의 대사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말합니다. 러시아어로는 ‘뽀드탁스트’라고 하는데, 연극의 묘미는 그 숨어 있는 의미에 있습니다.
제 사진 속에는 이러한 숨어 있는 이야기나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이걸 ‘서브 포토(Sub Photo)’라고 부릅니다. 주룡적벽의 둘레길이 일반인에게 곧 개방됩니다. 역사를 알면 유람이 아니라 역사 탐방이 됩니다. 영산강과 주룡나루가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나길 기대합니다.
주룡나루의 멋진 일출과 유달산에서 바라본 낙조 4컷씩 함께 올립니다. 물론 유달산에서도 우리 민족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멋진 주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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