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잠일기(栢蠶日記)

팔마비가 그리운 시절

728x90

 

순천 팔마비, 2020년 12월 15일

 

선암사 입구의 피라칸사스

팔마비(八馬碑)가 그리운 시절

 

지금 목포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고하도에 갔다 오면서부터 줄곧 순천을 떠올렸다. 순천에는 순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순천 정신이 있다. 오늘 그 순천 정신을 언급하려 한다. 지인들에겐 이미 소개한 바 있다.

순천에 고려 말의 청백리 최석(崔碩)의 송덕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이름하여 팔마비(八馬碑). 이 팔마비 속에 순천을 뛰어넘는 공직자의 표상이 숨어 있다.

1281(충렬왕 7) 승평부사(昇平府使) 최석이 비서랑(秘書郞)으로 자리를 옮기자 고을 사람들은 예전의 관례에 따라 말 8필을 기증하였는데, 최석은 상경한 후 기증받은 말 8필과 암말이 가는 도중 낳은 망아지 1마리를 보태어 9필을 다시 돌려보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 뒤부터 부사가 오고 갈 때의 이런 관폐(官弊)가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고을 주민들은 그의 송덕(頌德)을 기려 비를 세우고 이름을 팔마비라 하였다.

그 뒤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1617(광해군 9) 승주 부사 이수광(李睟光)이 복원하였다. 전면은 '八馬碑(팔마비)'가 해서로 양각되어 있는데 글씨는 진사 원진해(元振海)가 썼다. 비의 뒷면은 이수광이 짓고, 동지(同知) 김현성(金玄成)이 썼다.

원래 이 비는 남문 연자교 옆에 있었으나 하천공사로 현재의 위치인 순천문화재단 입구에 있다. 도심 속에 조금은 답답한 느낌이 든다.

당시 승평부의 풍속에 읍의 수령이 갈릴 때마다 반드시 말을 주었는데, 부사(府使)8, 부사(副使)7, 법조(法曹)6필씩 마음대로 골라가게 하였다.

능히 서울에만 이르면 족할 것이거늘 말을 골라서 무엇하겠는가.”

최 부사가 집에 돌아간 뒤 그 말들을 되돌려 보내니, 고을 사람들이 받지 않으므로 최석이 말하기를내가 그대들 고을에 수령으로 가서 말이 망아지를 낳은 것을 데리고 온 것도 이는 나의 탐욕이 된다.

그대들이 지금 받지 않는 것은 아마 내가 탐을 내서 겉으로만 사양하는 줄로 알고 그러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망아지까지 되돌려주니 이로부터 증마(贈馬)의 폐단이 마침내 끊어졌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그 덕을 칭송하여 비석을 세우고 팔마비라 이름하였다. 청렴의 상징이다.

최석 부사도 대단하고 마음 사람들도 대단하다. 정유재란 때 파괴된 것을 다시 복원한 이수광도 존경스럽다.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치르고, 광해군 때의 정치적 갈등과 인조 때의 이괄(李适)의 난을 겪었던 어려운 정국에서도 당쟁에 휩쓸리지 않고 선비의 자세를 지켰던 지봉(芝峯) 이수광!

순천시립극단의 단원 평정심사를 갈 때마다 이 팔마비를 찾는다. 새로운 정부의 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의 청문회로 나라가 시끄럽다. 총선에 뛰어든 후보들을 보면서 청백리 최석이 그리워진다.

팔마비는 2021325일 국가지정문화재 중 보물 2122호로 지정되었다.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나라가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모든 공직자들이 임명장을 받고 나서 이 팔마비 앞에서 청렴 선서를 해야 할 것 같다.

순천시가 팔마콘텐츠를 살리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 팔마 콘텐츠는 순천국가정원을 뛰어넘는 세계적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하드웨어에 매몰된 지역의 문화관광! 이제부터라도 소프트웨어에 눈을 돌려야 한다.

팔마(八馬)는 달리고 싶다!!!

 

빗길 조심하세요.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728x90

'백잠일기(栢蠶日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5월 1일 새벽을 열며  (0) 2022.05.01
붉은 피 꽃이 되어 하늘에 피네  (0) 2022.04.30
컷오프(Cutoff)  (0) 2022.04.27
봄비 내리는 새벽 꽃을 가슴에 심는다  (0) 2022.04.26
내려올 때 보이는 꽃  (0) 2022.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