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부모로부터 태어난다.
그리고 결혼하고 부모처럼 자신의 후세를 남긴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어미로부터 태어나 새끼를 만들어 종을 이어간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공통점은
새끼를 보호하고 양육시킨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규범과 기준을 만들어 여러 단계의 의례(儀禮)를 고안해냈다. 인간의 의례는 문화적 질서다.
동물은 대개가 어미를 부양하거나 조상을 공경하지 않는다. 아마 이 점이 동물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이러한 의례의 정점은 주자가례가 아닐까?
조선의 사회는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충실히 따르는 유교적 사회였다. 따라서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하는 모든 의례는 자손이 번성하고, 조상을 모시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서구문물의 유입과 산업화로 주자의 가례는 그 설 땅을 잃고 있다. 혼례와 상례(喪禮)는 전통과 외래와의 절충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다. 문제는 제례(祭禮)에 있다.
부모 제사까지는 그래도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 제사로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갸륵한 장손(長孫)만이 연례행사로 죽을 맛이다.
시제(時祭)로 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5대조 이상의 제사인 어제 시제에 참석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어제 21세조 할아버지와 그분 두 아드님의 시제였다. 조상들의 산소가 너무 떨어져 있다는 점, 경향 각지에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현대의 후손들이 각 조상님의 시제에 다 참석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도 위토답(位土畓)이 있는 우리 문중은 참여자들에게 여비를 준다. 그럼에도 참여하는 후손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후손들을 나무랄 수 없는 문제다.
가난한 문중은 어떻게 할까? 꼭 우리 문중만의 문제가 아니어서 이 블로그를 통해 담론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본다.
한국의 장묘문화와 장례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문화적 질서도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
어제 시제에 참여한 후손의 가장 어린 나이가 62세였다. 우리 다음 세대에게 시제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씨족이나 문중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시제도 축제로 전환되어야 한다.
후손들이 모여 조상님을 숭배(崇拜)하며 정(情)을 나누는 축제의 장(場)이 되길 기원(祈願)한다.
연극의 기원이 제사로부터 출발했다.
서양연극의 개념인 ‘Theatre’도 제사를 지내는 장소인 ‘Theatron’에서 유래했고, 동양연극의 개념인 ‘극(劇)’이나 ‘희(戱)’도 제사의 개념에서 출발했다.
계속 쓰면 논문이 될 것 같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멈추고 추후, 다시 언급할 예정이다.
오랜 기간 시제를 주관해 온 상혁 형님!
수고가 많으셨어요!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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