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지 중에서 80이 넘으신 분으로 나와 카톡을 하는 어른이 네 분 계신다. 연령순으로 둘째 외숙, 막내 숙모, 큰집 장형, 원소 형님이다.
네 분의 공통점은 내 블로그의 열렬한 팬이시다.
이모부께서는 카톡을 하지 않고 내가 보내 준 문자로 내 블로그를 보신다. 새벽 4시에 일어나셔서 내 블로그부터 보신다. 86세이시지만 지금도 정정하시다.
숙모님은 카톡을 능수능란하게 하신다. 제 블로그를 주로 보시는 쪽이지만 간혹 세련된 영상이나 사진을 보내신다.
큰집 장형은 목사님이시다. 새벽 5시에 카톡을 보내는데 내가 읽든 말든 주로 성경 구절을 보내신다. 그리고 내가 보낸 사진에 감탄의 표현을 자주 하셨다.
원소 형님은 동생인 나를 존경하는 쪽이다. 특히 자신이 모르는 우리 조상들의 역사에 대해서. 그러시면서도 좋은 문구나 영상이 있으면 하루 두서너 개씩을 보내는 분이다.
어제 장형 원주 형님이 소천하셨다.
집 근처인 옥암천, 수변공원, 영산강변을 혼자 걸으며 많은 생각에 젖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우리 집이 유교에서 군산동으로 이사해서 살고 있었는데 형님이 사거리에서 중고 자전거 한 대를 타고 오셨다. 벚나무에 세워둔 그 자전거를 내가 언덕길에서 혼자 탔다. 넘어지면서 또 일어나 자전거 타는 것을 그날 그렇게 배웠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원주 형님은 장손(長孫)의 노릇을 하지 못했다. 성직자의 신분이라고 하지만 집안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아버지의 질책을 받았다. 그러나 항상 웃는 얼굴로 심성이 참 좋은 분이었다.
조상들의 이야기나 선산 문제를 다루는 내 글에 대해서 형님은 침묵을 지켰다. 암 선고를 받은 이후로 나도 형님에게 부담이 되는 글이나 사진들은 보내지 않았다.
형님은 유독 꽃과 시골 풍경 사진을 좋아하셨다. 블로그 재개설 전 카톡 사진에 “예술이다!” “작품이다!”를 연발하셨다. 카톡 내용을 분석해 보니 지난 몇 개월간, 형님은 성경 문구로 하루하루를 버틴 것으로 느껴진다. 어제까지 나는 카톡을 보냈고, 형님은 일요일 오전‘남도 가을풍경’까지는 보신 것 같다.
형님이 보낸 마지막 글은 물론 성경 구절이다. 어쩌면 자신에게 보내는지도 모른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귀가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이사야 1:18)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원주 형님이 소천했다.
하늘나라 그곳에서
호랑이 작은아버지, 우리 아버님도 조카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원주 왔냐?”
어제 유독 내 눈에 띄는 꽃이 있었다. 옥암천과 수변공원, 영산강변에도 이름 모를 이 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솔나물꽃’이라고 나온다. 그런데 솔나물꽃은 아니다.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다.
형님은 유교리 선산으로 오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이 꽃을 ‘망형초(望兄草)라 부르고 싶다.
가시는 그 길에 이 꽃을 바친다.
형님이 그리워했던 우리 동네, 고향의 풍경과 함께.
2021. 10. 13.
새벽
'백잠일기(栢蠶日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달산(秋達山) (0) | 2021.11.02 |
---|---|
영산강 억새와 석양 (0) | 2021.10.27 |
새벽 바다 (0) | 2021.10.12 |
갈치만 보지 말고 하늘을 보라! (0) | 2021.10.11 |
목포 삼학도에서 (0) | 2021.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