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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공

가을에 핀 홍매화 요즘 제 주위에서 참 신기한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봄에 피는 꽃들이 가을에 피니 말이죠. 물론 여름에 피던 금계국이나 기생초들이 지금도 남아 있지요. 그런데 과실나무에서 가을에 꽃이 피는 경우는 처음 봅니다. 명자나무꽃은 목포 집 근처에서 날마다 봅니다. 사람들 눈에는 잘 띄지 않는데 제 눈에는 보이네요. 모과나무의 꽃인데, 야생 모과나무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개모과나무’라고 들었는데, 크기만 작지, 영락없는 모과 열매가 열였네요. 빨간 꽃이 앙증맞게 예뻐 가슴에 담았습니다. 두 번째 소개하는 꽃은 매화인지, 이화(梨花)인지 검색할 수 없네요. 매화 같은데 줄기에 가시가 없고, 배꽃 같은데 줄기가 가늘고 깁니다. 몽탄 근처의 영산강 강변에서 봤는데, 위험해서 근접 촬영이나 검색을 할 수 없었네요. 아.. 더보기
금호사(錦湖祠)를 아시나요 금호사(錦湖祠)는 전라남도 나주시 남내동 4-2에 있는 사당(祠堂)으로 금호(錦湖) 나사침(羅士沈)을 비롯한 그의 여섯 아들의 신위(神位)를 모신 사우(祠宇)다. 나주시는, 금호사에 배향된 인물의 행적이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금호사를 2018년 3월 27일 나주시의 향토문화유산 제47호로 지정하였다. 금호사의 배향 인물 7인은 기묘사화, 기축옥사,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자호란 등 조선 역사의 변곡점에서 서 있다. 그들은 굳건한 선비정신과 충효를 바탕으로 가문과 나라를 지키며 호남(湖南) 사림(士林)의 표상(表象)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금호공과 그의 여섯 아들의 행적은 앞으로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만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참판(工曹參判) 겸(兼 ) 예문관 제.. 더보기
삼강문을 아시나요 마침내 나주나씨 삼강문(三綱門)을 소개할 시점이 되었다. 이 삼강문을 통해 일로 주룡에 잠들어 계신 분들의 정신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삼강문은 유교 도덕(儒敎道德)의 핵심인 삼강오륜(三綱五倫)에서 따 온 말로서, 본시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旌閭)이며, 충효열의 표상(表象)이다. 삼강문은 고귀한 삶을 살다 가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다. 나씨 삼강문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91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씨 삼강문은 두 곳에 있다. 하나는 나주시 남내동 15번지에, 또 하나는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에 건립되어 있다. 나는 내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응축되고 정신세계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는 이 삼강문의 소개를 직접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 더보기
새색시 보름달 보름달 시집 오는 날 새벽부터 폭우가 쏟아지더니 오전 내내 날씨가 흐렸다. 참으로 변덕스러운 날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런 변덕은 괜찮다. 거짓말처럼 오후부터 화창한 하늘이다. 유교리에 들러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에 다녀왔다. 상석(床石)에 휴대폰과 자동차 열쇠를 올려놓고 인사를 드렸다. 백부님 내외, 숙부님 내외 묘소에는 고개를 숙여 묵례만 드렸다. 유교마을 앞 당산 침계정에서 고향 선배와 후배들이 술자리를 하고 있었다. 합석하여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나누고 일로 청호리로 향했다. 먼저 주룡나루에 들러 오늘의 월출 전망을 점검하고 갈룡산으로 향했다. 8세조 녹사공 내외분, 9세조 무안공 내외분, 14세조 반계공 내외분 합장묘 앞에서 묵념을 드렸다. 일주일에 서너 번 성묘하기에 별도의 큰 인사는 드리지.. 더보기
갈룡산 가는 길 백잠일기 초(抄) 흐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주룡은 다른 곳과 다르게 일출 기미가 보였다. 은적산에 운무가 깔리며 하늘이 다시 어두워진다. 상사바위 쪽만 윤곽이 뚜렷하며 나머지는 온통 운무에 젖었다. 철교 위의 하늘도 다시 회색빛으로 변하며 비가 내릴 기세다. 6시 40분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거세지며 영산강의 물결이 바다처럼 거칠어진다. 땅에 떨어진 능소화가 애처롭다. 우산을 들 수 없어 용호정(龍湖亭)으로 몸을 옮긴다. 사람들은 족보 없는 이 정자를 더 선호한다. 강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주룡나루의 아름다움 속에는 아픈 역사도 숨어 있다. 며느리와 딸을 강물에 잃은 금호공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내와 여동생의 시신을 강 속에서 건져낸 반계공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제수씨와 여동.. 더보기
주룡마을의 노을 소포(嘯浦)는 임진왜란의 공신(功臣)인 나덕명의 호다. 자는 극지(克之)이며, 귀암(龜菴)이라는 또 다른 호가 있다. 기골이 장대하여 담력이 컸으며, 29세인 1579년(선조 12)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으나 그것이 마지막 벼슬이었으며, 일생을 야인으로 살았다. 아버지 금호공 나사침((羅士忱)의 장남으로 1551년(명종 6) 나주에서 태어나, 1610년(광해군 2) 향년 60세의 나이로 여생을 마쳤다. 주룡나루에서 도보로 100m 걸어가면 2번 국도가 나온다. 그 도로의 지하를 건너가면 큰 망모산과 작은 망모산이 보인다. 이 두 산을 사이에 두고 아담한 마을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앞은 수령 500년 이상의 웅장한 당산나무가 버티고 있다. 첫눈에 봐도 예사로운 .. 더보기
금호도(錦湖島)의 낙조 금호도(錦湖島)에서의 한나절 문득 ‘한나절’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하룻낮의 절반이니 6시간을 의미한다. 어제는 해남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산이면(山二面의 금호도(錦湖島)다. 예전엔 섬이었지만 육지와 연결된 지 이미 오래다. 집에서 20분이면 도착하는 곳. 바다가 보고 싶을 때, 목포를 벗어나고 싶을 땐, 고하도나 이곳을 자주 찾는다. 아내와 움직일 땐 항상 막걸리 한 병과 안줏거리를 준비하여 경치 좋은 곳에서 한잔한다. 그러나 금호도에 갈 때는 예외다. 가는 길에 맛집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가는 곳은 내장탕으로 유명한 곳이다. 내장탕은 하루 50인분만 팔기 때문에 오후에는 먹을 수 없다. 어제 우리는 국밥 대신 순대 안주를 시켜 이른 저녁을 먹었다. 블로그 ‘가을과 바다’는 순대 안주를 기다리며..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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