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목포의 시인들과 막걸리를 마셨다.
목포에 내려온 지 40일을 넘긴 양광모 시인과 함께.
제목부터가 목포스럽다. 경아네집.
돼지머리와 오징어볶음에 막걸리 네 주전자를 마셨다.
막걸리가 다 떨어져
마지막 한 주전자는 다른 곳에서 사왔다.
한국작가회의 최기종 시인이 김성호 시인의 '목장갑 무덤'을 낭독했다. '목포는 항구다' 시는 양광모 시인이 낭독했다.
요즘 나는 조선의 마지막 선비 나철, 황현에 푹 빠졌다. 두 분은 호남 선비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공교롭게도 나철과 황현은 호남의 대학자 왕석보(王錫輔. 1816∼1868) 선생 밑에서 수학했다. 좋은 스승이 좋은 제자를 만든다. 확실한 증거다. 조만간 구례를 다시 가야할 것 같다.
최기종 시인께 나철에 관한 시 창작을 강력하게 권했다.
20편을 말했는데 10편만 나와도 멋진 시극(詩劇)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최기종 시인의 시는 다음 기회에 소개한다.
오늘은 후배 김성호 시인의 날이다.
목포는 항구다
김성호
너 떠나고 날은 저물었다
그때 뱃고동이 울었는지
안개 속이었는지는 생각에 없다
너 떠나니 날은 저물었고
돌아서는 길은 어둡고 어두웠다
너의 울타리가 내게는 담장,
벽 앞에서는 밤눈이 캄캄했다
담벼락에 대고 몇 번
구토를 했었던 것 같다
비틀거리며 걷다 몇 번
담벼락에 몸을 기댔던 것도 같다
항구의 뽕짝이 슬퍼졌던 것은
그 무렵의 일
지금도 나는 이 노래를
다는 부르지 못한다
목장갑 무덤
김성호
손이 빠져 나간 뒤 장갑은 손가락 마디마디를 채우던 따뜻했던 시간들을 떠올리다 그 빈 자리의 허전함, 상실감 때문에 형체를 잃고 쓰러진다. 풀썩 주저앉는다. 더러 속을 뒤집어 까 보이며 돌아눕는다. 공처럼 몸을 말아 웅크리고 있기도 한다.
애초 손을 위해 태어난, 삶이 맹목이었음을 느끼기도 하는가. 저마다 그림자를 깔고 앉는다. 깍지 사이 어둠들을 놓아두지 않는다. 한결같이 기름때에 절고 진창에 빠진 낙담한 낯빛, 딱딱하게 굳은 돌 하나씩을 가슴에 앉힌다. 스스로도 돌이 된다.
여기 쌓여 있는 목장갑 주검들. 서낭당처럼 수북한 무덤이여, 장갑을 거쳐 간 손들이여, 그대들 빌고 또 빌었던 꿈꾸던 세상이 과연 오긴 왔는가
어제 아침 우연하게 오리 네 마리를 인상 깊게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세 시인과의 술자리를 예고한 것 같다.
시인들이 순수하다.
옥암천의 오리처럼.
그래서 시인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시를 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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